만약 환생이 있다면? 가이드북

먼저 이 글을 읽기 전에

신과 나눈 이야기 - 닐 도널드 월시
당신 영혼의 계획 - 로버트 슈워츠
티베트 사자의 서(바르토 도돌) - 파드바삼바바

를 한번정도 읽어보시는 게 좋을 꺼 같다고 생각하네요.



만약 환생이 있다면, 그것은 어떠한 것일까요?

일반적으로는 랜덤이다, 혹은 '카르마'에 의해 후생이 결정되며 착한 일을 하면 좋게 태어나고 나쁜일을 하면 나쁘게 태어난다는 정도로 주로 알고 있는데 사실은 이와 같은 의견들은 그저 추상적으로, 혹은 기성종교의 단순 논리만을 보고 쉽게 판단내린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게다가 세상에는 절대적인 선악이 존재하지 않기에 모든 영혼들의 행위를 재단할만한 절대적인 기준도 없고, 절대적이고 신성한 기준이 없으니 더 나아가서는 이에 기반해 누구를 지옥에 보내거나 축생으로 태어나게 할 일은 더더욱 없는 것이지요.


위의 3가지 책에서는 이러한 과정에 대해 각각의 관점에서 사후세계를 그리고 있으며, 나름대로 일관성이 있다고 보는 게 제 개인적인 생각인데요. 상당 부분 일반인의 상식적, 종교적 관념과는 상당히 다른 양상을 띄고 있습니다.



먼저 죽은 뒤의 행동지침을 소개하고 있는 '바르토 도돌'을 보면
죽은 뒤에 지각이 확장되고 능력이 증가하여 깨달음을 상대적으로 쉽게 얻을 수 있고, 깨달음을 얻는 것이 여의치 않다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환생을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제시하고 있지요.


이 글은 우선 환생 가이드북이므로 그 중에서도 일단 환생에 대해서만 다뤄보자면요.

세세토록 윤회전생을 반복하면서 수없이 苦를 체험하는 것은 영혼에 있어 굉장히 힘든 일이고.
책에서는 그 무엇보다도 세상의 환상과 윤회전생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진리를 아는 것(영적으로 크게 성장하여 자신의 본질을 깨닫는것)을 가장 중요한 환생의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특히 이를 위해서 카르마나 영혼의 감정적 흐름에 의한 선택을 지양하고 의식적으로 조절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그저 흐르는 대로 환생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다음 생에 있어 고귀한 목표를 지향하고, 영적인 이끌림과 감정을 의식적으로 조절하여 순환을 끝낼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춰 후생을 계획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바르토 도돌'이 환생에 대해 조언하는 것들 중 핵심적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후생은 과연 어떻게 정해지는 것일까요?

신과 나눈 이야기와 당신 영혼의 계획에 대해 읽어보시면 이에 대해 어느 정도 자세하게 나와 있으며,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영혼은 자유의사로서 후생을 결정하고 조건과 체험을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즉 누가 심판하거나 강요하는 것이 아니며, 결국 최종적인 선택은 자기가 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환생을 할 때 테마나 주제를 가지고 환생하는 것이 가능하며, 이에 맞춰 조건을 정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환생을 할 때 어떠한 목표를 가지고 환생하는 게 좋을까요?

이건 정말로 영혼마다 다양하나
종국적으로는 지구에서의 고통을 떠나 더 높은 깨달음과 지혜와 영성의 증대를 얻기 위해 목적을 잡는 것이 좋다는 것이 '바르토 도돌'과 나름의 깨달음을 얻은 영적인 현자들이 제안 하는 것입니댜.

그러나 이와 같은 것은 하나의 좋은 결론 중 하나일 뿐 영혼들은 자유의사로서 선택할 수 있고, 물질적, 감정적인 테마들도 얼마든지 가능하며 나쁜 것은 아니지만요.



영계에서의 환생 조건의 고려

모든 후생의 조건은 영혼이 목적과 의사에 맞추어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으나
문제는 죽어서 영혼이 된다고 해서 자아가 갑작스럽게 변화하거나 위대해지는 것이 아니며 생전의 경향성을 일정 부분 가지고 간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영계에서는 부정적인 감정이나 혐오 증오와 같은 부정적 에너지와 자기심판과 같은 것들이 억제되기에, '부정적인 것'에 대해 느끼거나 사유하기 어렵기에 물질계에서의 결과에 대해 진정으로 알기는 어렵다는 점이 있습니다.
사실 이것이 영혼들이 지구에 환생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지요.


그렇기에 영계에서는 좋게 생각되었던 조건들이 물질계에 육화 한 뒤에는 극단적인 고통과 시련으로 몰고갈 수 있으며, 영들은 고통과 시련에 대해 진정으로 이해하지는 못하기에 환생을 정할 때에는 물질계의 관념과 사상을 고려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지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지상계 사람들의 사회문화, 기술 수준, 자연자연의 특성을 고려해서 환생 조건을 정해야 한다는 것이며, 영계에서는 미처 깨닫지 못하였더라도 물질계의 입장에서 볼 때 마이너스가 되는 특질들은 차후의 환생 시에 고통과 고난만을 안겨 줄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계에서의 능력과 자질, 기억을 가지고 내려가는 게 아니라 모든 걸 다 잊고 체험하게 되니까요.


이에 대해 예를 몆 가지 들자면요...

먼저 시련과 고통에 대해 조금 언급하자면, 영계에서 생각하는 것과 물질계에서 그것을 직접 맞아가면서 당하는 건 매우, 극단적으로 다릅니다. 왜냐하면 그 곳에서는 지금의 기억과 결심을 모두 잊을 것이고, 전혀 예고받지 못한 곳에서 융단폭격의 중앙에 들어와 있는 것과 같을 것이니까요.

보통 영들은 긍정적인 가능성을 보며 시련을 선택하지만
실상은 1보 전진을 시도하다 PTSD와 부정적인 특질만을 잔뜩 남긴 채 3보 후퇴할 가능성이 높은 매우 큰 도박입니다.

성공할 수도 있긴 하겠지만 slow but steady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영혼은 영원불멸하니 조금 늦는다고 나쁜 건 없으며 잘못 선택했다가 도리어 후퇴하는 경우도 매우 많습니다.



물질계의 인간 입장에서 볼 때 시련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며
22세기 이후 미래시대에는 어찌될 지 모르겠으나 21세기 이전에 환생할 것이라면 아래에서 제시하고 있는 것들은 선택하지 않거나 매우 심사숙고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1. 장애
동서고금 장애는 환생에 있어 + 요인이 되기가 어렵습니다.

일단 사회적인 인식에서 큰 마이너스이며, 남들은 기본적으로 가진 기능조차 기능하지 않는다는 것은 굉장히 큰 불편감과 고통을 야기하거든요. 일부 영혼들은 트라우마나 돌봄받는 것을 계획하기 위해 이러한 특질을 선택한다고도 하나 이런 걸 바란다면 다른 선택지를 두는 것이 더욱 나을 것입니다.
영혼에게 있어서는 물질계에 가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운 장애이자 제약과 마찬가지인데, 여기에 추가로 더 얹을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모든 기억을 잃을 것이고 결국 수십년 이상 원망과 고통 속에 버려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생각해야만 합니다.


2. 낮은 계급
구체적으로는 먹고살기 위해 생존노동을 해야 하는 계급, 구체적으로는 비자유민 노예에서 일반 임금노동계급까지를 의미합니다.

21세기 현대를 포함한 동서고금의 인간 사회에서 신분과 빈부의 격차는 아주 큰 문제이자 개인의 인생에 있어 엄청난 차이를 가져오며, 생존을 위해 원치 않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과 경제적인 압박에 상당부분의 정신적 역량을 투입하여야 하는 것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큰 손실입니다.

19세기 이전의 전 근대 사회에서 낮은 계급은 사실상 인신의 자유조차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고, 20세기 이후 현대의 민주화된 사회에서조차 실상은 자본주의가 사회를 지배하기에 금전적으로 부족한 하층민은 사실상 자유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당장 먹고살기 위해 하루하루를 투자 해야만 하죠.


이와 같은 것은 결국 인생의 목적과 추구하고자 하는 지적, 정신적 역량의 증대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도리어 무의미한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지내다가 퇴보당할 가능성만 높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요.

일부 영혼들이 시련을 통한 성장이나 카르마를 빌미로 이러한 것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럴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결국에 모든 것은 협력하여 선을 이루기에
과거의 부정적인 일을 한 게 후회된다면 똑같은 조건에서 당하는 게 아니라 자기용서와 발전을 배우는 것을 선택하고, 성장에는 길이 아주 많다는 것을 유념하세요.


영의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인생의 핵심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사회경제적인 조건을 일정수준 이상 타고 태어나는 게 필수적이며, 가능하면 금수저로 태어나 평생 놀고먹을 수 있을 정도의 유산을 받을 수 있도록 설정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꺼에요.
혹은 로또 1등이 되는 환생을 설정하던지...

아주 높은 수준의 부귀영화는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며 영적, 정신적 목적의 추구에는 도리어 마이너스일 가능성도 적지 않으나 그렇다고 해서 돈이나 권세, 지위, 계급과 같은 것이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에요.
영적, 정신적 분야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기 위해서는 생계 노동으로부터 벗어나는 조건으로 시작하는 게 굉장히 유리한 특성이 됩니다.

권력과 물질 체험이라면 왕위나 재벌가문 계승자와 같은 부귀영화와 권력에 바로 통하는 것으로, 그렇지 않다면 부와 명예는 일정 수준 주어지지만 의무나 귀찮은 일들은 거의 없는 쪽(예컨데 부계 장자 계승 국가에서 5번째 공주로 태어난다던지 등)을 선택하는 게 좋겠지요.



3. 성 소수자
앞으로의 시대는 어떻게 될 지 모르나, 21세기 이전 시대를 기점으로 하자면 성 소수자는 특정 측면에서는 사실상 '장애'나 '범죄자'보다도 인생에 있어 더 심한 패널티이기도 합니다.

사회적으로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등에 대해 우호적인 사회는 21세기 초까지 그다지 존재하지 않으며, 종교적 방해와 탄압의 대상이자 일반인들의 관념 속에서는 일종의 정신병자와 비슷한 것이라는 인식이 깔린 지역이 대다수입니다.

게다가 동성애자의 경우에는 유의미하게 에이즈 발병률이 더 높으며, 특이한 성적 취향은 성에 대한 에너지 집중을 불러와 과도한 성욕을 발생시킬 가능성이 높기에 큰 마이너스가 됩니다.
미국에서 10대 여성의 임신률을 분석해본 결과 레즈비언은 일반 여성에 비해 2배 바이섹슈얼(양성애자)는 무려 5배의 10대 임신 가능성을 가진다는 논문도 있더군요.


트랜스젠더의 경우에는 사실상 낮은 등급의 장애 혹은 전과기록을 가진 것과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는데요.
겉으로는 특성은 숨길 수 있는 동성애자 등 다른 성소수자와는 달리 특성이 대부분 드러나기에 사실상 낙인을 가지고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현대 한국 기준으로 MTF 트랜스젠더의 완전한 성 전환에 소요되는 비용은 대략 2000 - 3000만원 정도입니다.


다른 국가와 사회는 잘 모르겠으나 현대 한국 기준으로 트랜스젠더는 사실상 범법자나 에이즈 보균자와 동급의 대우를 받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요.
사실상 어딘가에 취업하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렵고, 국가나 사회로부터 지원을 거의 받지 못하기에 사회 평균보다 학력이나 소득 수준이 매우 낮으며 이는 장애인 집단과 범법자 집단과 비교 될 정도입니다.

물론 이들의 경우에는 위의 3천만원 정도를 들이면 특성을 대충 감추고 살 수 있으나
그렇더라도 들키는 날에는 사실상 범법자나 에이즈 보균자 취급과 마찬가지이고, 사실상 낮인찍힌 것과 마찬가지라 취업이나 사회생활이 거의 불가능하기에 위의 돈을 거의 구할수가 없는 악순환의 고리를 가지고 있어요.

호기심풀이나 재미 등등으로 차기 환생에 이런 특성을 선택하게 되면 인생이 고달플 가능성이 높으며, 남들이 다 선택하는 일반적인 성적 지향을 따라 태어나는 것이 더더욱 낫다고 볼 수 있지요.


다만 여기서 다른 특질과는 달리 무로맨틱 무성애자로 태어나는 것은 나름의 장점이 있을수도 있는데요.

일단 인간에게 있어 상당히 문제일 수도 있는 연애와 성으로 인한 골머리를 앓지 않을 수 있고, 성직자의 길이나 영적, 정신적 진보를 바란다면 성적인 유혹이나 잡음과는 상관없이 정신적 역량을 집중할 수 있고 유혹에도 영향받지 않게 되니 매우 좋은 특질이라고 볼 수 있거든요.

반면에 인간의 인생 행복에서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연애와 성적인 관계와 행동에서 얻어지는 행복과 기쁨들은 누릴 수 없고 심지어는 이해하지조차 못할 가능성이 높으니 목적에 맞게 잘 선택하는 것이 좋겠지요.


4. 부정적인 성장 환경과 불운

어릴 적의 성장 환경은 다음생의 인격에 큰 영향을 끼치며, 예측되지 않는 불운은 대체로 좋지 못한 결과 혹은 세상에 대한 원망만을 만들어 낼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부정적인 성장 환경은 일반적인 시련 정도의 도박조차 아닌 끔찍한 결과만을 만들어내는 게 거의 확정적이며, 세심하게 사랑받을 수 있는 환경을 설계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볼 만합니다.
특히 부모를 아주아주아주 세심하게 골라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필요도 없죠. 학대하는 부모는 무조건 피해야 할 것 1순위입니다.

학교나 교육 환경에 대해서는 목적에 맞게 선택하는 것이 좋은데

영성과 지성의 확장과 깨달음이 목표라면 일단 그 무엇보다도 영적인 감각과 지성과 창조성을 키울 수 있는 교육기관이 가장 좋을 것입니다. 이러한 교육기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다는 것은 큰 축복이며 그 뒤의 인생항로의 고정과 발전에도 좋은 영향이 있을 가능성이 크거든요.

해당 사회에 존재하는 최고 수준의 명문 학교나 엘리트 교육기관은 부귀영화나 높은 지위쪽을 추구하거나 사회적으로 뭔가 하려는 목적일 때 선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러한 학교는 일반적인 지식의 학습이라는 점에서 가장 좋은 곳이며, 이러한 곳을 나왔다는 것은 유능함의 표식으로서 사회에서 존중받고 대접받을 가능성이 높거든요.

반면에 단점도 있는데..
이러한 학교들 중 영적, 정신적인 뱡항으로서 교육 방향의 고려를 하는 곳은 일부 신정국가를 제외하면 드물며, 일반적인 지식 학습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동료들도 대부분 경쟁의식과 엘리트 의식이 어느 정도 있을 것이기에 영향을 받지 않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 있지요.

해당 사회에서 수준이 낮은 교육기관과 사회경제적 수준이 낮은 지역은 가능하면 피하는 게 좋습니다. 이들의 전반적인 정신적 파장 수준은 낮기에 큰 도움이 안 될 가능성이 높거든요.


국가를 선택하는 것도 상당히 중요한 문제일 텐데
먼저 가능하면 자유를 존중하지 않고 경제 수준이 떨어지는 후진국은 무조건 피하는 게 좋구요.

완전히 부정적이진 않더라도 한국처럼 경제 수준만 높지 경쟁적이고 억압적인 교육 체제를 가진 국가군은, 경제수준은 조금 떨어지더라도 자유롭고 느긋한 문화를 가진 국가에 비해 좋을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 외에도 물질계에는 영계에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여기에 언급되지 않은 수많은 부정적인 요인들이 있으며, 이러한 요인들에 대해서 영계의 관점이 아닌 물질계의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겠지요.



5. 재능 없음/지능이 낮음

재능을 가진다는 것은 그렇지 않은 자에 비해 크게 유리하기에, 재능이 없다는 것은 반대로 인생에 있어 크게 불리하고 사람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습니다.
흔히들 노력하면 뭐든지 된다라는 게 한국과 같은 노력중심 사회에 널리 퍼진 속설이나 이는 사실이 아니며, 결국 이기는 자는 재능충?인 경우가 대부분이더군요.

노력도 재능이 뒷받침되어야 성과를 보며, 1만시간의 법칙은 실상 재능 있는 자가 1만시간을 노력하면 정상에 오른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재능이 있어야 노력에 대한 보상이 재깍재깍 주어지고 이걸 동기부여로 삼아 더더욱 노력하게 되는 것이 실력 증진의 선순환 고리이니까요.

재능의 선택은 다양하게 가능하나 일반적으로는 다재다능한 것이 좋으나 산만해질 가능성도 어느정도 있고, 특정한 한 분야에 집중하고 싶다고 하면 다른 분야의 재능을 희생하고 단 한두가지의 분야에 막대한 재능을 부여하는 것이 더 나을수도 있습니다.

지능은 무조건 높은 것이 좋은데
지능은 많은 영역에 영향을 끼치며, 지능이 낮을 경우 가능성이나 문제 자체를 못 볼 가능성이 높습니다. 즉 지상에서 인간으로서 살아가며 필요한 정보 분석 능력이나 여러가지 상황에 대한 고려 능력이 극도로 떨어지게 되어 불행을 야기 할 가능성이 높지요.


그 외에도 다양한 재능을 선택할 수 있으나
영매/초상능력에 대한 재능은 장단점이 명확하여 고려를 잘 해야만 할 것입니다.

일단 이러한 영능력이 있으면 기존의 영으로서의 인식능력이 어느정도 깨어 있게 되고 상황에 따라서는 전생에서의 정보를 일부 가져올 수도 있으나, 반면에 사회에서 미치광이 취급을 받을 우려도 있고 영적인 성숙도가 낮으면 이러한 요인들로 인해 막대한 심리적,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게다가 영적인 존재나 지식으로 인해 묶여 버리거나 하는 일도 비일비재할 수 있죠.

이러한 능력은 축복이면서 저주라는 양날의 칼이나 마찬가지이기에 본인이 준비되었을 경우에는 가지는 것이 좋으나, 그렇지 않다면 가지지 않는 것이 지상에서의 생활에 더욱 나을 가능성이 높아요.



카르마와 영혼의 균형에 관하여.

카르마, 혹은 업보라는 개념은 세간에서는 종교적인 의도나 영적인 이해력의 한계로 인해 상당히 왜곡되어서 알려 져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바로 행한 대로 되돌아온다인데, 소위 이번 생에 남을 때리면 다음 생에서는 그대로 얻어맞게 된다는 기계론적인 단순 논리로서 카르마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것이죠.
기성 종교의 대중적인 종교관이나 영계를 그진 많은 작품들, 혹은 낮은 수준의 영혼들이 생각하는 단순한 보복심리나 보상심리 등이 이러한 오해를 더더욱 확산시키고 있기도 하구요.


카르마/업이라는 것의 실상은 사실 세간에서 언급되고 있는 이러한 단순논리와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이는데요. 악행을 하면 벌받고 선행을 하면 천국간다와는 논리 따위가 아니라 현재 영혼이 형성되어 있는 양태라고 보는 것이 좀 더 맞을 것입니다.

즉 여태까지 '나'가 행하고 생각하고 말하고 감정을 느끼고 했던 것 등등이 어느 것 하나 영혼에 피드백이 오지 않은 게 없으며, 그 결과로서 나의 자아와 영혼을 형성하고 있는데 바로 이것이 영혼이 형성되어 있는 양태로서의 '카르마'가 되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어찌 보면 위의 단순논리보다 더 위험하고 무섭기도 한 것인데요.
세간의 단순 논리대로라면 죄를 지으면 다음생에 벌을 받고 끝이지만, 온갖 행위의 결과로서 누적된 영혼의 형성됨과 같은 것이라면 부정적인 행위를 통해 누적된 잘못된 양상은 고치기가 어려울 수 있고 심지어는 그것이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할 수도 있거든요.


여기서 더 나아가 카르마의 균형, 혹은 영혼의 균형에 대해 다루자면요.
바로 영혼이 수없는 경험과 성장을 통해 우주의 본질인 사랑과 기쁨, 열반에 다가간 상태를 말하며 전 우주의 흐름을 조화롭게 볼 수 있는 상태가 된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상태가 바로 영혼의 균형 혹은 카르마의 균형이며, 어딜 가나 신/근원적인 영혼의 본성을 알고 체험하며 부정적인 행동양태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 정도로 고도로 진보된 존재가 된 것이기도 하지요.

이러한 존재들은 어디서나 신을 보며 근원적인 사랑의 흐름과 하나됨을 느낄 수 있는 상태인 것이지요.
그렇지 않다고 해서 더 열등하거나 못난 것은 아니나, 그렇지 않은 존재와 이들의 차이점은 만물이 사랑이고 서로 연결되있음을 항상 인지하느냐 혹은 아니냐의 차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영혼의 발전, 진화라는 표현을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요. 사실은 진화라는 표현보다는 변화라는 표현이 더 맞는지도 몰라요.

모든 영혼은 신 안에서 완성된 상태로 존재하며 더 큰 것의 일부이기에 불완전성과 같은 건 사실 환상이라고 볼 수 있는데, 다만 끊임없이 나름의 기준에서 더 나은 것을 찾아 변화하려고 하는 것 또한 영혼의 속성이라 계속해서 변화하거든요.

그렇기에 영혼의 입장에서는 이와 같은 것이 진화이면서 동시에 대등한 변화이며, 그러한 변화는 강제되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영혼 각자의 자유의사에 따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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