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글]조선검술의 한계

아래의 글은 조선검술의 한계를 다룬 글입니다.
출처는 아부 사이프의 전투의 예술 블로그이며, 제목은[조선검술의 한계]입니다.
출처 링크 : http://zairai.egloos.com/m/591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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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로 남아있는 내용을 놓고 봤을 때 조선 관아의 검술 교습 체계는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

초기에는 기효신서의 번역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초기의 조선검술은 기효신서 따라하기에 지나지 않았고, 무예제보번역속집에서 일본의 검술 카타들이 수록되면서 좀 나아지지만, 무예도보통지 시대가 되면 카타들이 사라지고 혼자서 하는 투로들만 남는다. 예도보(조선세법)은 아니지 않냐고 할 수 있는데, 원래 예도는 총도/총보만 있었고 예도보는 무비지에서 보고선 이게 원본인가보다 싶어 나중에 발췌 수록한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다른 검술들이 언해본과 뜻이 통하는 것과는 달리 예도보는 언해본과 뜻이 잘 안통한다.

다른 사료를 통해 또다른 기본기가 있었느냐를 유추해 보아도 단서가 따로 나오지 않고, 오히려 본국검, 예도, 쌍수도 같은 투로를 무과 시험의 종목에서 선택해서 볼 수 있고 각 종목별 합격자 수도 나와 있는데 이런 투로들이 그 자체로 시험 과목 역할을 했음을 보여준다. 군영들마다 검술을 몇가지 선택해서 했는데 역시 이런 투로들이다.

그러니까 조선검술은 ~검이라고 해서 기본기-기술연습-대련까지 포함하는 완성된 검술이 여러가지가 준비된 게 아니라 그냥 XX검이라는 이름의 투로만 몇개 준비된 게 끝이었다는 이야기고, 검술은 점수따기용 교양과목 이상의 역할은 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조선검술은 크게 나눠 쌍수도, 제독검 등의 기효신서 계열, 예도 등의 무비지 계열, 왜검과 교전 등의 일본 계열로 나뉘는데 기본 공격이나 자세 등을 일컫는 이름조차도 각 계열마다 따로 논다! 기본적인 용어와 검리의 통일조차 되어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건 한 군대를 가르치기 위한 통합 커리큘럼으로써의 정리조차 되지 않았다는 것으로 심각한 문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 본국검이라고 보는데 일격(一擊)/일자(一刺)등의 일본계열 용어, 은망/수두/우찬격 등의 무비지 계열 용어, 향전격적 향우방적 등의 기효신서 계열 용어가 섞여있다. 각 검리를 통합 정리하기 위해 하나의 통합 투로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여지며, 타국의 것이 아니라 자국의 것이므로 본국검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어영청중순등록에서도 나오듯이 본국검, 신검의 합격자는 비율상 0.2%밖에 되지 않으므로 아예 인기가 없었으며 통합 투로로써의 위치도 제대로 차지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모아김씨의 도움으로 조선검술들의 원형을 역추적할 수 있음은 물론 구체적으로 어떤 검술을 참고로 형성되었는지도 알 수 있는데 조선검술은 이미 무예도보통지의 시대에 간략화, 파편화되어있어 사실상 커리큘럼으로써의 가치는 상실된 상황이었다. 그 이전에도 커리큘럼으로써 가치가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고종 시대에 좋다는 총 아무거나 사다 무장시킨 것처럼 좋다는 검술 아무거나 들여다가 난잡하게 모아놓은 느낌이고 그조차도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교전이 그나마 2인 기술연습, 구미다치 스타일인데, 교전에서도 그다지 기술적으로 수준 높은 것이 없다. 타돌해서 베기로 키리무스비(베기해서 칼이 충돌하는 것)를 각각 내려베기, 올려베기로 하는 것과 내려베기를 검을 수평으로 들어막고 치는 것을 서로 반복하는 것, 찌르기를 내리쳐서 튕겨내는 것, 막판의 소드레슬링이 전부다. 모아김씨에 따르면 전체적으로 직심영류의 냄새가 강하게 나는 기술 구성인데,

교전 카타는 칼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병사가 기세를 가지고 용감하게 공격하며 부딪치고 싸우는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어 간단한 기술로 기세와 용기를 기르기에 좋긴 하지만 너무 단순한 기본기로만 구성되어 있어서 그냥 병사용 이상의 뭔가를 기대할 수는 없는 수준이다. 이걸 만든 김체건의 사려 깊음은 알만하다. 검술 훈련비중이 적어 기술을 심도있게 배우기 어려운 상황에서 초보자에게 가장 유용한 힘과 기세, 용기를 기르는 데 중심을 둔 시스템으로 그의 마음을 알 만 하지만, 아무래도 수준높은 검술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만족을 주기는 어렵다. 게다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무예신보에서는 양날검으로 연습했는데 자꾸 다치니까 환도로 바꿨다가 다시 목검에 가죽 씌운 걸로 대체했다고 하는데 그정도의 구미다치도 소화를 못한 걸 보면 교관단의 노하우나 교육생들의 수준이 김체건이 원한 최소한의 정도도 만족시키지 못한 것 같다.

직심영류나 다른 일본 유파를 참고하여 재구성한 왜검이나 교전, 명대의 무술서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조선세법 등을 보면 검의 기술 자체는 나쁘지 않고 진짜를 잘 배워온 것으로 보여지지만 결국 검술은 교양과목 취급받고 적당히 투로로 정리해서 그것만 연습하는 과정에서 심하게 몰락해갔던 것으로 보인다. 하다못해 김체건의 교전이라도 열심히 했으면 당장 전쟁터에서 꿀린다는 소리 듣지 않았을 것 같지만 잘 이뤄졌던 것 같지도 않다.

여러군데에서 중구난방으로 들여온 검술의 혼재, 그것을 하나로 통합하는 과정의 부재, 그로 인해 혼란스러운 여러 검술 체계의 난립, 적당히 안다치는 교양과목 수준으로 처리했던 검술에 대한 인식과 비중, 이를 인지하고 해결하려 한 교전이나 본국검 등의 시도가 호응을 얻지 못하고 점차 외면받은 점 등은 사료를 통해 분명하게 인지되는 조선 관급 검술 체계의 참담한 한계점이다.

결국 구한말 조선은 일본의 죽도 격검을 도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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