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특설대 요약


간도특설대는 일제시대 당시(1938년) 조선인 징병제 도입에 앞서 구성한 실험 성격의 부대로서, 만주국군 특수부대 중 하나였습니다. 일부 일본계 장교와 병사가 있긴 했지만, 구성원은 대부분 조선인이었다고 하네요.

조선인으로 구성된 부대였지만 일본어를 공용어로 사용하였으며, 초등학교 졸업 이상의 학력을 요구했었다고 합니다. 복무 기한은 3년이었다고 하구요.

당시 만주국 사관학교를 졸업한 조선인 장교들은 대부분 이 부대에 배속되었는데, 대표적인 사람들이 신현준, 백선엽 등이고. 만주국 육사 출신 조선인 장교들의 집합소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특이한 점으로서 중국인으로 구성된 만주군 부대들은 일제말기 반란을 일으키거나 국민당군으로 편입되거나 하는 일이 많았으나, 간도특설대 요원들은 1945년 8월 20일까지 일본제국의 군대로서 항전하다가 강화소식을 접한 뒤에야 해산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보면, 대부분의 구성원이 비-일본인이었지만 사실상 일본군에 준한 충성심을 가지고 있던 것으로 생각되더군요. 아니면 너무 가혹행위가 심하고 중국 땅이다보니, 국민당군이나 팔로군에 가면 되는 중국인으로 구성된 부대와는 달리 갈데가 없고 뭘 하건 비참한 결말이라고 생각했었는지도 모르지만요.

당시 간도특설대는 일본제국 내에 창설된 첫 조선인 중심의 부대이다 보니 프로파간다 선전에 많이 활용되었으며, 지급되는 장비는 당시의 기준으로는 일급품이었다고 합니다. 간도협화회 같은 조선인 유지들로 구성된 일제 하부기관의 반자발 반강제성 지원도 많이 받았기에, 당시 기준으로는 군사적인 면 이외의 지원도 상당히 풍족했으리라 보여집니다.


백선엽의 회고록 등을 참고해볼 때 부대의 원래 목적은 대소련 특수작전 중심이었으리라고 생각되는데요. 그러나 당시의 만주 농촌은 실질적으로 온갖 항일세력이 지배하고 있었기에, 실질 임무는 대 게릴라 전이었다고 하며 남아있는 기록에 따르면 보복성으로 전투포로와 민간인 살해를 저지르는 등 상당히 잔혹한 토벌을 했었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기록상으로는 7년동안 한달에 한번 이상 토벌작전을 벌였다고 하네요...

토벌 작전방식으로 다른 일본군 혹은 민주군 부대와는 조금 다른 방식을 썼었다고 하는데요. 먼저 사복을 입은 정보수집부대인 '편의대'를 운용하여 현지인에게서 호의를 사고 정보 조사를 한 뒤 돌입하는 방법을 활용했으며, 게릴라와 조우할 경우 가능한 한 섬멸전을 추구했었다고 하더군요.
당시 간도특설대 출신 한국인의 기록에 따르면 우수한 대민 작전을 펼치고 약탈을 자제했었다고 하나, 토벌 과정의 잔혹함을 생각해보면 반 정도만 사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있네요.


군기와 병영부조리는 아주 심각한 수준이었으리라고 생각되는데, 한 장병이 상관에게 약간의 누를 끼쳤다고 자살(이라고 쓰고 처형이라고 읽는)하는 등 비상식적인 일들이 많이 일어났었다고 합니다.(더 놀라운 건 당시의 신문에 이런 일이 미담으로 기록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군기를 유지하는 방법 또한 비합리적인 기준을 바탕으로 무한정 구타와 얼차려를 주는 방식으로 유지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부대의 구성원들은 현대에는 전원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기록되어 있는데요.
당시 장교의 경우에는 군 사령부의 임의배속 방식이었으며, 일반병의 경우에도 간도협화회 등에 의해 지원이라고 쓰고 차출이라고 읽는 형식이 상당히 많았기에, 그런 의도가 확고했었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하지 않다고 보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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