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중세시대 결혼의 특징




중세시대의 결혼은, 크게 현대의 법률혼이라고 볼 수 있는 '문트'결혼, 자유연애를 통한 결혼인 '프리델'결혼, 영주와 종 등 신분 차이가 나는 사람끼리 맺어졌던 캡스 결혼으로 나누어 지더군요.

먼저, 현대 법률혼과 비슷한 의미의 '문트'결혼은, 말 그대로 교회법에 의한 합법적인 결혼을 말하는 것인데요.

중세 시대 유럽에서도 문트 결혼은 일부일처제만이 인정되었으며, 신에게 하는 신성한 서약의 일종이라고 여겼기에 왕이라고 해도 문트 결혼을 통해 부인을 2명 두기는 어려웠다고 하네요.

당시의 게르만전통과 남존여비적인 전통에 따르면 문트 결혼은 아내를 남편에게 종속시키는 것과 마찬가지였는데요. 아내는 남편의 말을 들어야 했고, 남편은 아내에게 정조대를 채우거나 공공장소에서 때릴 권리가 주어졌었다고 합니다.


또한 이와 같은 문트 결혼은 대개 당사자가 아닌 부모의 의사에 의해 이루어졌는데요.
특히 상류 귀족 집안에서는, 부모의 의사에 따라 정략 결혼으로서 어린 아이들을 결혼시키기도 했다고 하네요. 
심지어는 60세 할아버지와 14세 소녀를 결혼시키는 일도 잦았습니다.. ㅡㅡ
이러한 문제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자 나중에는 사제가 당사자의 의사를 묻는 절차가 추가되었으나, 그 뒤로도 별 차이는 없었구요.


특히 여자들은 자기 스스로 결혼상대자를 고르기 매우 어려웠으며
당시의 문화적인 특성상 결혼 이전에는 부모의 소유물, 결혼 이후에는 남편의 소유물로 여겨졌기에 그야말로 마치 재산 거래되듯이 한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또한 신과 교회법의 승인을 받은 공식적인 결혼은 문트 결혼 뿐이기에
문트 결혼에서 결합한 부부의 자녀만이, 작위를 물려받고 가문의 공식 후계자로서 활동할 수 있었다고 하네요.


당시 문트 결혼의 절차들 중 재미있던 점은.
결혼식이 끝난 뒤, 무조건 신랑과 신부가 침대에 누워서 하룻밤을 지내야 비로소 효력이 발휘된다고 보았다는 점이에요.
이건 어린 나이에 하는 정략결혼이더라도 예외는 없었으나, 다만 어린 애들의 경우 서로 동화를 들려주거나 하면서 놀았을 뿐이라고 하네요^^


또한 당시에는 대리 신랑이라는 것도 있었는데요.
당시는 교통과 통신이 그리 좋지 못했고, 고위 귀족의 경우 전쟁터 등을 돌아다니는 경우도 많았어서 정해진 결혼식에 오기 어려운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대리 신랑, 혹은 신랑의 장갑이 신랑 역할을 대신하는 것도 유효한 결혼으로 간주되었는데요. 이 경우에도 무조건 하룻밤은 있어야만! 했다고 하네요. 다만 이 경우에는 신랑신부의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 공개적인 장소에서 서로의 장딴지를 맞대는 것으로 대신하였다고 합니다.




반면에 이와같은 사회적인 공식 결혼 이외에 프리델 결혼이라는 것도 있었는데요.
오늘날로 보면, 이는 연애 겸 사실혼정도로 볼 수 있을 듯 해요.
(루이 15세의 정부였던 퐁파두르, 프리델 결혼의 대표적인 예라고 볼 수 있어요.)

주로 자유연애를 통해 이루어졌으며, 고위 귀족층에서는 공식(문트)결혼은 거의 전적으로 부모의 의사와 정략결혼의 목적으로 이루어 졌으므로 대개 자신이 사람하는 사람은 프리델 결혼으로 맞아들이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네요.

프리델 결혼의 경우에는 법률적으로 속박되지 않았기에 자유로웠고
서로 쉽게 해소할 수 있었으며, 고위 귀족이나 왕족의 가족 내에서는 이러한 결혼상대자의 지위는 주로 정부(첩)인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드물지만 여자가 자신보다 지위가 낮은 남자를 프리델 결혼으로 거느리고 있던 사례도 있었으며, 소수는 문트 결혼으로 바뀌기도 했죠. 자유를 위해 일부러 이렇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네요.

프리델 결혼은, 기본적으로는 교회법과 신성한 맹세에 의한 것은 아니었기에 그 자녀가 가문을 이어받을 권리를 가지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관습적으로 결혼 자체는 인정되었으며, 일종의 편범 겸 사회적인 숨통을 펴주려는 것들 중 하나였다고도 볼 수 있겠지요.


그 외의 캡스 결혼은 신분 차이가 나는 사람 간의 결혼으로, 대개 축첩의 목적이었을 것이라고 보면 되구요.



이와같은 걸 보면요...
전근대시대에 결혼의 목적이란 대개 가문을 잇는 것이었고.

여기에 개인적인 사랑을 통한 정부나 사실혼 등의 형태가 한국에서도 조선시대 등의 결혼문화를 생각해볼 때 거의 비슷한 형태로 나타났다는 걸 생각해 보면, 독일문화의 특수성보다는 보편성이 더 눈에 띄는 것 같더군요.

물론 세부적인 의전절차나 방식은 달랐지만
거의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주된 결혼양식이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 걸 보면, 이러한 건 인간의 본성이나 마찬가지인 것으로 볼 수 있을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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