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글]삼성의 경영전략에 관하여


                       
삼성

  우리가 삼성이라는 대기업을 바라보는 시각은 두 가지가 있다.

  세계적인 대기업과 경쟁하여 여러 제품군에서 수위를 달리는 한편, 미국 내 특허 출원순위가 2위이고, 세계 각국의 첨단산업 완제품 점유율이 높은 대단한 기업이라는 시각과,
  사카린 밀수사건 등의 굵직한 문제들을 일으키고, 다른 기업들의 제품을 빠르게 베껴서 날로 성장했다는 시각이 있다.

  혹자들은 삼성이 애플과 같은 기업들의 기술을 베껴서 언론플레이를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그러한 가정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왜 하필 삼성만이 그렇게 무리수를 써서라도 애플과 경쟁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은 나오지 않는다. 세계적인 대기업들이 '카피캣'으로 폄하되는 삼성을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원인은 무엇인가? 언론플레이와 정부의 밀어주기때문인가? 그렇지는 않다. 그것은 바로 기술체감의 법칙과 마케팅공학의 산물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거꾸로 말해 대다수의 다른 세계적인 대기업들은 이런 법칙을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다.

기술체감

  기술은 오직 어떤 재화나 서비스 또는 그에 상당하는 어떤 자원을 좀 더 편하게 잘 가공하기 위해서만 필요하다. 그리고 어떤 물건을 만들 때는 여러가지 공정이 필요한데, 이 공정들이 각각의 기술을 확보한다는 것은 각 과정을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문제는, 공정 각각의 기술의 최적화가 전체 공정의 최적화를 보장한다거나 전체 공정의 최적화가 생산수익의 최적화를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고전경제에서는 기술이 생산의 한 요소로서 작용하므로, 기술이 투입되면 투입되지 않은 때에 비해 좀 더 좋은 물건을 잘 만들 수 있음이 확실하지만, 기술을 구현하는데 전체 생산비용에 대비하여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들어가기 시작하면 이것은 전적으로 개소리가 된다.즉, 비지니스에 있어서 상품이나 서비스를 판매한다는 것은 생산을 통해 부가한 가치가 현실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공정에 있어서 기술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과하게 그것이 많이 필요하지는 않다. 주식시장에서 많은 기업들이 매일매일 많은 기술을 개발하고 또한 특허를 낸다는 공시를 내지만 그 때 마다 투자자들이 열광적으로 반응하지는 않는 까닭은 오직 이 때문이다. 어떤 기술은 생산요소와 결합하여 이익을 늘릴 수 있는 유의미한 기술이어야만 그것을 개발한 효과가 있는 것이다.

  과거 1990년대의 일본의 기업들은 6시그마 공정이라고 하여, 전체 제품 100만개를 생산하면 오직 하나만이 불량품이 나오도록 품질관리를 하였다.(정확히 말하자면 목표가 그러했다는 말이다.) 그리고 일본 제품들은 잔고장이 나지 않고 튼튼하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 결과는 기업의 순이익에 대해서는 어땠을까? 품질이 좋은 물건을 만들어서 소비자로부터 충성도를 획득하였으니 순이익이 많이 났을까?

  처음에는 그러했다. 전 세계 전자제품 시장의 80%를 점유하며, GE나 필립스같은 대단한 기업들을 파산직전까지 몰아넣기까지 하였다. 소비자들은 일본 제품이 다른 것들보다 비싸더라도 충분히 구매를 감행하였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한다.

  경제학에는 '양말장수 이야기'라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양말을 짜는 장인이 절대 떨어지지 않는 양말을 만들면 처음에는 다른 제품과 비교우위를 가져서 물건이 잘 팔리지만, 양말을 한 번 사서 절대 떨어지지 않게 되면 나중에는 자기가 이미 판 제품이 자기가 팔려고 하는 양말과 비교대상이 되므로 전체시장의 크기가 줄어들고 결국 양말장사는 굶어죽는다는 이야기이다. 일본이 그러했다. 일본 기업들은 자신들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확장한 시장에서 엄청난 이득을 올리고서, 생산시설을 확장하는 절체절명의 실수를 저지른다. 그렇게 공장을 확장해 놓았는데, 경제학적으로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 이유로 전체 시장의 크기가 줄어들기 시작한다.(적어도 1990년대 후반에는 설명되지 않았다. 그 뒤에 행동경제가 3년쯤 뒤에 설명해 주었지만)

  그리고 전자제품시장의 침체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1990년대에 팔아먹은 일본의 냉장고가 아직도 고장나지 않고 있으니 백색가전 시장은 거의 거의 개판이 되다시피 시장규모가 줄어들었다. 이런 와중에, 1996년 전후의 엔화강세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에서는 수출을 장려하고, 일본 기업들은 자사 제품을 일시적으로 할인판매하던가 할부를 해 주는 등으로, 원래는 미래에 일어나야 할 소비를 현재로 당겨와서 일으켜버렸다. 그리고 1990년대 후반에 일본 전자기업들은 거의 망하기 직전의 상황에 몰리었다. 자기들이 판 제품이 오히려 자기들의 목줄을 죌 줄이야 누가 알았을까.

  우리가 이 일화에서 깨달아야 할 사실은, 기술이 많이 발전하면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수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시장최적화와 기술최적화

  당시 이런 기업들에 비해 거의 듣보나 다름없던 삼성은 이렇게 일본 기업들이 위기에 몰린새를 틈타, 그리고 김대중 정부의 대기업 산업 집중정책에 따라 반도체와 전자제품공정에 주력하게 되었다. 원래 삼성은 LG는 물론이고 당시의 현대전자나 롯데전자에 비해서도 질이 떨어지는 물건을 만들고 있었는데, 어찌되었건 위와 같은 문제의 약 5년정도간에 산업역량을 집중하고 기술을 개발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삼성은 2000년 초반부터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3만원에 불과하던 삼성전자 주식은 지금 100만원 가까이 할 정도로 올랐고, 백색가전은 무조건 LG를 사야한다는 신혼부부의 철칙을 보기좋게 깨 버렸다. 이 때 동안 개발한 삼성의 기술이라는 것은 공학적이나 이학적으로 아주 대단한 것이었을까? 그렇지는 않다. 삼성전자는 시장이 요구하는 수준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러한 물건을 만들어서 팔려면 무엇을 최적화해야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예를들어, 삼성전자가 '기술을 훔쳐온다', '다른 기업을 베낀다', '그냥 조립공장이다'라는 폄하를 듣던 지난 10년전 쯤, 우리는 아주 중요하고 의미있는 고민을 할 필요가 있었다. '도대체 왜 다른 조립공장들은 삼성과 같은 물건을 못 만들까?' '기술이 없다는데 어떻게 기술이 없는 물건이 잘 팔리고 있을까?'

  답은 시장최적화에 있다. 아주 좋은 물건과 아주 좋은 부품으로 만든 아주 좋은 물건은 비싸다. 혹은 핵심부품같은 원재료가 필요하지 않은 물건조차, 많은 기술과 그에 상당하는 노동이 투입된다면 비싼것이 지당하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아주 좋은 물건만 팔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적당한 수준의 물건이 가장 큰 시장을 가지고 있다.

  또한, 기술의 계속적인 발전에 따라, 우리는 모든 기술을 다 최적화 시킬 필요가 없어졌는데, 그 이유는 기술을 최적화 시켜봤자 쓰는 사람이 느낄 수 없는 미미한 차이라면 그런 기술따위 그다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지금의 스마트폰보다 인터넷이 2배정도 빠른 스마트폰이 있고 이것의 가격 역시 2배 더 비싸다면 이 스마트폰을 구입할 미친놈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므로, 시장 최적화라는 것은 쓰는 사람이 구별할 수 없는 수준의 기술에 대해서는 기술의 최적화를 진행하지 않고 명백한 구분이 가는 부문에 대해서는 집중적으로 역량을 투자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시장이 요구하는 물건을 만들면 되지, 시장을 굳이 리드한다거나 없는 수요를 창출하는 모험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삼성의 전략인 것 같다.

  이것이 얍삽하다던가, 기업가 윤리를 지키지 못한다는 비난은 하지 않는 편이 좋다. 왜냐하면 이것은 아주 효율적이고 과학적인 시장최적화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기업이 물건을 만들면서 소비자를 충분히 만족시키는 동시에 수익을 창출하는 것은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단지 질도 나쁜 물건을 비싸게 파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절대적인 질이 좋든 나쁘든 사용상에 차이가 없으면 그것을 트집잡아 '이 물건은 질이 안좋아'라고 말하는 것은 강짜에 가깝다.


경영기술도 기술

  삼성전자는 엄청난 경영기술을 가지고 있다.

  필자는 삼성이라는 기업을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고, 알바도 아니지만, 삼성의 이러한 경영방침은 최적화라는 공학적인 시각에서 바라보았을 때, 그리고 소비자경제에 대한 현실적인 분석이라는 시각에서 바라보았을 때는 천재적이라고 말하고 싶다.

  혹자는 삼성이 무슨 물건을 만들어서 세계시장을 주도하고 있어도, 삼성이 기초기술이 없다는 말을 아무런 근거도 대지 못하는 채 앵무새처럼 쫑알대는데, 굳이 공정만이 기술이 아니라 유통이나 디자인이나 시장분석 역시도 쉽게는 획득할 수 없는 기술인점을 감안해 보았을 때 그렇다는 말이다. 시장을 주도하는 새로운 엄청난 물건을 만드는데는 기업의 사활을 걸어야 하지만, 어떤 물건이 잘 팔리는 것을 보고 그 물건을 만들어 파는 것은 그 기업에게 영속적인 안정성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도전적이고 혁신적인 것만이 가치있는 것은 아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에서 트렌드를 파악하고 시장이 요구하는 상품을 그 기대수준에 맞게 빠르게 개발할 수 있다면 그 기업이 진짜 공정기술이 있든 없든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야 말로 안정적이고 계속적인 수익 창출이라는 기업의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이다. 괜히 이상한 새로운 기술 만들어서 세계시장을 장악하려 들었다가 닌텐도나 워커맨처럼 몇 년 지나고 소리소문없이 사라질 바에야 계속 그냥 '빠른 추격자'로 남는 편이 옳은 선택이다.

  그리고 그것 역시도 기술이다. 삼성 말고 세계 그 어떤 기업도 그런 짓을 못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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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은 일부 과장이나 잘못된 개념을 담고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맞는 내용으로 작성되어 있더군요.

특히 삼성은 초대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조직구조가 빠른 기동성과 역량 집중을 할 수 있는 형태로 되어 있는데요. 이는 특정한 산업 분야에서 빠른 시일 내에 최고가 되긴 어렵다 하더라도, 상당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문어발식 재벌그룹 구조라는 점으로 인해, 시대에 따라 선호 분야가 바뀌더라도 다른 계열사를 성장시켜 대응할 수 있다는 점도 있지요.

이러한 안정성이나 구조성으로 인해, 삼성은 일정 범위 내에서의 환경변화에 대해 매우 잘 적응하며 변화가 빠르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게다가 패스트팔로워 전략은 넓게 보면 퍼스트 무버보다 더 안정적일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는데요. 왜냐하면 퍼스트 무버는 1등 상태를 유지하는 데 있어 많은 비용이 들어가고, 실패 시 타격이 매우 크거든요.
패스트 팔로워는 최적화된 타인 전략을 흉내내는 선에서 행동을 한정하게 되는데요. 이로 인해 1위 사업자보다 수익이 적더라도 안정적인 저비용-고수익을 노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시장에서 가장 앞서가는 1등 사업자를 흉내내는 것도 쉽지만은 않기에, 어떤 분야에서도 빠르게 1위 회사를 추격하는 삼성의 능력은 상당한 것이 됩니다. 패스트 팔로워 전략은 상당히 안정적인 전략으로서, 여러 산업에서 스쳐 지나간 여러 '퍼스트 무버'보다 회사가 더 오래, 그리고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 전략의 효율성을 알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아마 삼성이 애플보다도 더욱 더 오래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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