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 해석

먼저 아래 글은 https://puredhamma.quv.kr/34 의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 - 잘못된 해석이라는 글에서 따왔음을 밝힙니다.


석가모니 부처가 주장했던 이론들 중 핵심은 바로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a)라고 하는데요. 논리구조적으로는 아닛짜(anicca)이니(-> 이어짐구조) 둑카(dukkha)이고(-> 이어짐구조) 아낫따(anatta)입니다.


한국에서는 무상 - 고 - 무아 라고도 알려져 있는 내용이나 원문의 해석과는 맞지 않는다고 하는데요.

이 3가지 단어의 원어는 빠알리어(Pāli)였으며, 문자가 없는 언어였어서 구전으로만 이어졌다고 합니다. 수백년이 지나서야 이종 언어인 싱할라어로 처음 문자로 기록되었고, 이 단계에서 또다시 수백년이 흐른 뒤 한자어 등으로 번역되고 현지대중의 입맞에 맞는 종교로 변모하면서 미세한 의미가 손상된 것으로 생각됩니다.(한국 대승불교의 오류 부분)

다른 한편으로는 현대 불교 연구는 많은 부분 근대 유럽인들의 종교연구에 영향을 받았는데요. 이들 학자군은 불교와 동시에 힌두교적 개념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었기에 개념이 상호 오염되기도 했다고 합니다.(현대 상좌부불교의 오류 부분)



저 3개의 단어 중 오역이 있는 것은 아닛짜(anicca)와 아낫따(anatta)인데요.

먼저 아닛짜(anicca)는 여러 가지 뜻을 함축한 단어로서, 근본적인 의미는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자신을 만족스럽게 계속 유지시켜 줄 수 있는 것은 없다' = '그 어떤 것도 만족스러운 상태에 계속 있는 것은 불가능하며, 계속해서 상태가 변화'한다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영원하지 않다'는 의미의 무상과는 큰 차이가 있으며, 기본적으로 불교에서는 모든 것이 인연(연기)에 의해 계속해서 이어지므로 사실상 영원히 존재합니다. 다만 그 상태가 연기법에 의해 계속해서 바뀔 뿐.


아닛짜(anicca)의 위의 의미에 기대 둑카(dukkha)를 해석하자면 고(苦)인데요.
세상 그 어떤 것도 지속적으로 변화하기에 사람이 원하는 대로 영구적으로 만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하고(아닛짜), 언젠가는 고통이 찾아온다라는(둑카)의미 입니다.



아낫따(anatta)의 경우에는 무아(자아가 없음)이라고 흔히 번역되나, 위의 아닛짜와 둑카에 이어 해석하자면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합니다. 

위의 아닛짜 -> 둑카의 부분을 논리적으로 해석하자면 '세상 그 어떤 것도 지속적으로 변화하기에 사람이 원하는 대로 영구적으로 만족시키는 것인 불가능하고(아닛짜), 언젠가는 고통이 찾아온다' 인데요. 여기서 석가모니가 주장한 원래 논리대로라면 이러므로 아낫따이다(anatta)라는 논리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여기에 무아(자아가 없음)을 넣게 되면 고통과는 관련이 없는, 논리적으로 어긋난 구절이 되어버리죠.

여기서 불교적인 의미의 둑카(dukkha)에 대해 통찰하자면, 짧게는 현생에서의 상실의 고통, 기쁨이 사라지는 고통이 있으나 더 넓게는 그 결과(세상적인 것들을 추구하고 집착하면서 악업을 지은 결과) 최종적으로는 악처에 떨어지는 결과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여기서는 세상 것들에서 나오는 기쁨은 짧고 영원하지 않으며, 그 댓가로 현생과 내생에 크나큰 고통이 따를 뿐이기에, 세상의 것들은 어떠하다라는 수식어가 나와야 합니다(논리적으로)
자아의 여부는 고통을 서술하는 어와는 큰 상관이 없으니, 논리상 올바른 해석이라고 볼 순 없는 것.


위 글에서는 아낫따(anatta)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일시적 존재이며 영원한 기쁨을 줄 수 없고 고를 초래한다. 따라서 '실속이 없으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라고 해석을 했는데요. 이렇게 해석할 경우 위의 아닛짜(anicca)이니 둑카(dukkha)이고 아낫따(anatta)이다. 라는 논리구조에 정합성이 있는 묘사가 됩니다.


따라서 아닛짜(anicca)이니 둑카(dukkha)이고 아낫따(anatta)이다. 

= 이 세상의 법칙상 이 세상에서는 그 어떤 것도 우리를 영원히 만족스럽게 유지시켜 줄 수 없으며(아낫따), 이로 인해 언젠가는 고통이 찾아온다(현생의 상실의 고통, 한계효용의 고통에서부터 내세에 악처에 떨어지는 고통에 이르기까지)그 때문에 우리는 마음이 괴롭고 산란스럽게 된다(둑카)
그렇기에 세상의 것을 추구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볼 때 진정으로 무력하며, 실속(의미)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아낫따)


= 이 논리를 뒤집으면 둑카(고통)은 아닛짜(무한히 변화하고 영원히 만족시켜줄 수는 없는 것들)에 집착하고 의미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생겨난다 -> 인식의 변화를 바탕으로 숙고와 노력을 통해 고통이 없는 상태(열반)에 이를 수 있다라고 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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