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탄핵과 왕좌의 게임

24. 12. 14일 오후 5시부로 국회 투표 300중 204표로 윤석열 탄핵이 통과되었습니다.
물론 국회에서 탄핵된다고 해도 헌법재판소에서 다르게 판결할 가능성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대부분은 높은 확률로 최종 탄핵에 이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더군요.


그렇지만 저 위에서 윤석열이 탄핵 되건, 조국이 감옥 가건 이재명이 재판 받건, 혹은 그 외의 뭐가 어떤 일이 일어나건 간에, 사회의 99%를 구성하는 하층민의 삶이 달라질 리는 없습니다. 

헬조선의 왕으로 누가 즉위하건, 누가 귀족노릇하고 누가 대장노릇하건간에 하층민은 생로병사의 고통과 노동과 세금과 헬조선의 폭정 속에서 도축 당할 뿐으로, 설령 세종대왕이 부활해서 내일 윤석열을 대신해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하층민의 삶이 바뀌는 것은 없겠죠.


큰 차원에서 보면 대의제 민주주의란 하층민을 위한 체제가 절대 아니며, 그저 기득권층들의 권력 게임이자 하층민 기만의 수단으로 쓰이는 시스템일 뿐입니다.

과거 전근대 시대에는 현대보다 인구도 적었지만 기득권이라고 불릴만한 사람들도 적었는데요. 이로 인해 현대에 비해 권력 갈등과 권력 변동 자체의 필요성이 크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소수의 가문이 권력을 지속하는 왕과 귀족이 되어서 하층민들을 통치하는 체제를 유지해도 큰 문제는 없었으며, 사회 전체적으로 교육의 수준이 낮아 대놓고 신분제를 시행해도 반발이 크지 않았던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왕좌의 게임 규칙이 간단해도 큰 문제가 없었으며, 소수의 기득권이 마음대로 하는 세상이 오래 지속될 수 있었습니다.


현대의 사회 서적이나 교육용 초급 역사 서적에서는 왕좌의 게임 규칙이 전근대의 왕정-신분제 시스템에서 대의민주제로 옮겨간 것에는 민중들의 혁명이 컸다고 서술하고 있는데요. 실제로는 그것은 큰 의미가 없었고, 기득권층의 수가 늘어난 것과 사회학, 심리학의 발전으로 하층민을 효율적으로 부리는 데 기만이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에 왕좌의 게임 규칙이 이에 맞춰 변동된 것에 불과합니다.


산업혁명과 자본주의의 발달, 사회 분야의 증대로 각 분야에서 기득권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수는 크게 늘어났는데도 불구하고, 왕좌는 여전히 하나 혹은 소수의 사람만이 가질 수 있다는 게 이 문제의 시발점이었는데요. 과거 왕정-신분제 체제 하에서는 물리적으로 왕(또는 고급귀족)가문을 무력으로 몰아내는 것만이 권력 교체를 할 수 있는 방법이었으나, 이 방법은 대부분 사회적 비용이 많이 소요되고 국가 집단 전체의 효율성을 크게 저해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그러다 보니 특정한 기준에 따라 기득권 간에 유연하게 왕좌를 전달할 방법을 궁리하게 되었고. 그 결과로 나온 여러 대안적인 시스템 중에 투표 기반의 대의민주제 체제가 가장 안정적으로 운영되었기에 많은 나라에서 이런 시스템을 채택하게 된 것이죠.

먼저 이 시스템에는 다른 시스템에서 볼 수 없는 장점이 있었는데요.
기득권이 아닌 피통치자들을 투표에 참여시켜 하층민으로 하여금 국정을 결정할 권리가 있다는 믿음 아닌 믿음을 부여해서 권력의 상층부에 더 잘 복종시킬 수 있다는 큰 이점이 있었으며, 기득권들끼리 한패라는 사실을 감추고 위장하기가 쉽다는 점이 있었습니다.

비록 잘 살펴보면 개별 투표의 영향력은 아무리 따져봐도 0에 가깝고, 투표 관리 시스템에 대해 피지배자가 개입, 감시할 방법이 없다는 객관적인 사실이 있지만, 일단 겉으로 드러나는 요식행위 그 자체만으로도 지적 수준이 낮은 하층민을 기만하기에는 충분하니까 말이죠. 실제로 투표라는 도구는 기득권층 내부에서 권력 분점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될 뿐 하층민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거나 그들의 이해를 대변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능하지 않고 있지만, 어쨌거나 표면적으로는 대중의 민의를 반영한다고 주장할 수 있으니 말이죠.


1. 하층민에 대한 정치적 기만과 무력화

하층민들은 투표와 같은 요식행위를 통해 자신들이 국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환상을 가지게 되는데요. 실제로는 그들의 역할은 권력을 가진 소수가 정해 놓은 선택지 안에서 기득권층 내부의 권력 다툼을 조정하는 들러리 역할에 불과합니다.


이를테면 국민은 기득권들이 추려 뽑아 놓은 10명 이하의 후보군 중 특정 후보를 선택할 수는 있지만, 그 후보를 내세운 정당이나 기득권 집단의 정책 방향이나 정치적 결정 과정에 직접 개입할 수 없으며, 심지어는 당선 뒤 공약을 지키지 않고 폭주하더라도 제재할 방법이 전혀 없죠.

2. 권력의 재생산과 기득권의 지속

대의민주제는 기득권층의 권력을 재생산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는데요. 이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선거 비용의 문제: 정치에 진입하려면 막대한 자금과 자원이 필요하며, 이는 곧 자본을 가진 기득권층만이 정치를 독점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듭니다.
  • 정당 구조의 한계: 정당 내부의 실질적 의사 결정권은 소수 엘리트에게 집중되어 있으며, 이러한 구조는 기득권층의 이해관계를 유지하고 확대하는 데 기여합니다.
  • 언론의 역할: 주요 언론 매체들은 대체로 기득권층의 입장을 대변하며, 여론을 조작하여 대중이 권력 구조를 비판적으로 인식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3. 사회 시스템의 고착화

현대 사회에서는 교육, 경제, 법률 시스템 모두가 대의민주제라는 틀 안에서 작동하며, 이는 구조적 불평등을 고착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 교육 시스템은 대의민주제를 이상화하는 지식을 주입하며, 대의민주제와 투표를 통한 사회 구조 구성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억제합니다.
  • 경제 구조는 대다수의 하층민이 소수의 기득권층을 위해 일하면서도 정치에 참여가 어려울 정도로 가난하게 살도록 설계되어 있으며, 이는 기득권층에 대한 정치적인 종속을 더욱 강화하고 있습니다.
  • 법률 체계는 고의적으로 허점이 있게 설계되어 기득권층의 이해를 우선적으로 보호하고 있으며, 그들에 대한 실질적인 견제를 어렵게 만듭니다.
4. 하층민 기만의 지속성과 대안 부재

하층민들은 대의민주제를 통해 자신들이 통치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는 환상을 얻지만, 이는 실제 권력 구조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볼 수 있죠. 설령 오늘처럼 기득권 소속의 특정한 정치인이 힘을 잃고 탄핵되거나 교체된다고 해도 시스템 자체는 전혀 변하지 않으며, 하층민의 삶 역시 달라지지 않습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대의민주제는 단순히 하층민을 기만하는 수단을 넘어, 그들이 스스로의 억압적 구조를 정당화하도록 유도하는 강력한 메커니즘으로 작용하고 있는데요. 즉, 하층민이 자신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시스템의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게 만들고, 이를 개인의 능력 부족이나 노력 부족으로 치부하게 만듭니다.


대의민주제는 기득권의 안정적인 왕좌의 게임일 뿐

결국 대의민주제는 하층민을 위한 체제가 아니라, 기득권층 내부에서 권력을 평화롭게 분점하고 재생산하기 위한 안정적인 도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층민의 삶은 대의민주제 하에서도 여전히 고통스럽고, 권력 구조의 변화는 그들의 삶에 변화를 가져오지 않고, 많은 경우 가면 갈수록 더 고통스럽게 만들기나 할 뿐이죠.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극복하려면, 단순히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의 교체를 넘어, 권력의 본질과 그 재생산 메커니즘 자체를 변화시키는 근본적인 대안이 필요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이러한 대안이 존재하지 않거나, 대의민주제를 위시한 기득권층의 강력한 저항에 의해 실현 가능성이 매우 낮은 상태라고 볼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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