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 하라리[극한의 경험]과, 전쟁 회고록의 변화를 통해 바라보는 시대정신과 환경의 변화



유발 하라리의 '극한의 경험'책을 심심풀이 겸 해서 한번 읽어 보았는데요. 기대했던 것 보다 사상이나 문화에 대한 통찰력이 눈에 띄더군요.


서구 전쟁문화에 대해 중세 - 근세 - 현대의 순으로 그 변천과정을 보여 주는데, 주된 내용은 전쟁터에서의 회고록과 참전용사들의 기술 양상이 시대가 지나면서 달라지는 것에 대해 다루었더라구요.


먼저 중세시대의 참전 기록에 관해서 이야기하자면...

중세 시대에는 신과 영혼을 중심으로 하여 사고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기에, 육체와 관련된 이야기인 첫 전투나 전투에서의 경험과 같은 것들에 대해서는 그다지 다루지 않고 있구.... 도리어 휴식 중 우연히 읽은 책에서 얻어낸 신앙 관련 영감이나 깨달음 등지를 더 중요하게 회고하고 있는 경우가 많더군요.

유발 하라리는 중세시대의 이러한 전쟁 회고 경향성에 대해 '정신이 육체보다 우월하다'라는 사고방식에서 나왔다고 보았는데요.
당시는 기독교 신앙의 전성기이기도 하였으므로, 인간의 근원은 영혼이고 육체는 껍데기와 같다라는 사상이 주류였기에 전쟁터에서조차 그런 회고록이 주류가 된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 같더군요.
다만 개인적으로 볼 때 이러한 분석 과정에서 하라리가 빠트린 부분이 조금은 있는 것 같기도 한데요. 비론 정신적으로는 달랐을지 몰라도 물리적인 구성 요소는 근대인이나 중세인이나 동일하였고, PTSD와 같은 현상에서 중세인들도 절대 피해갈 수가 없었다는 점이지요.


여기에 개인적인 해석을 하나 더 달자면...
바로 근세와는 다른 중세만의 '보편적인 죽음과 노동 환경'이 또 다른 변수로서 작용한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요.

중세의 군대는 기계적인 학대와 광기를 통해 유지하였던 근세의 군대보다는 상대적으로 조금 덜 가혹하였던 반면에, 민간 생활에서의 노동 강도는 근세보다 높았고 흑사병과 같은 질병으로 인한 사망도 많았으며 가혹한 형벌이나 처형과 같은 것들도 유희로서 즐겨 질 정도로 죽음과 관련된 게 아주 흔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있네요.

즉 중세 시대의 전쟁관이 이렇게 된 데에는...
당대의 주류적인 사고관이었던 정신(신앙) 중심론만으로 인해 형성된 게 아니라, 흔한 죽음과 가혹한 노동환경의 영향으로 인해 전장에서의 체험을 그다지 진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게 하였다 정도가 맞을 꺼 같더군요.



유발 하라리는 근세 이후로는 전쟁경험 자체가 특별한 영적인 영감이나 권위의 근거가 된다고 생각하는 게 주류가 되었다고 보았는데요. 이렇게 된 이유 또한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일단 하라리가 책에서 이야기하였던 '정신 중심에서 육체 중심으로 사고관이 바뀐 것'이 있는데, 이것은 정신과 영혼을 강조하였던 기독교의 사상적 권위가 쇠퇴하고 계몽주의와 근대 합리주의가 역사의 전면에 떠오르기 시작하면서 생긴 당연한 변화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지요.
아무래도 근세 계몽주의 사상들은 전면에 '반 기독교'를 내세웠기 때문에, 중근세 기독교사상의 근원인 정신 우월론, 신앙 중심론과 같은 것에 대해 맹렬히 비난을 퍼부을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와 함께 근세로 들어서게 되면서 과학기술이나 사상적, 사회적인 진보도 가시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하였는데요.
이에 영향을 받은 민간사회의 환경은 급격히 개선되어 간 반면, 군대는 도리어 하나의 정신이 육체를 지휘한다는 사상에 매몰되어 복무 환경이 급격하게 악화되었고 무기의 발전은 전장에서의 대량 살상과 전투 스트레스를 크게 증가시켰지요.

그 결과 민간 사회와 충분히 괴리될 정도의 환경에 처하게 되었고, 경험주의와 육체 중심의 사상과 맞물린 결과 전쟁에서의 경험은 과거와는 다른 특별한 권위를 가지게 된 게 아닌가싶기도 하네요.


전쟁의 경험에 대한 특별 인식은 현대에까지 이어지고 있는데요.

시대가 흐르며 군사 복무 요건은 많이 개선되었으나
반면에 대량살상무기와 군사기술의 발전은 전투 스트레스를 시간이 지날수록 더더욱 늘려주고 있고, 과학기술의 발전과 인권 개념의 도입으로 인해 민간부문에서의 생활상 개선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어 군대 환경은 대체로 민간 환경보다 나쁜 상황이 유지되고 있기에 이러한 견해가 어느 정도는 유지되는 것 같더군요.


미개국들을 상대로 손쉽게 승리를 거두던 제국주의 시대에는 국가에 기여한다는 인식과 합쳐져 전쟁이나 군과 관련된 것들이 낭만적으로 여겨졌으나, 강대 강의 싸움이었던 세계대전과 군국주의 이후로는 매우 부정적인 개념이 되었고 이러한 인식은 어느 정도 현대에까지 이어져오고 있지요.

그러나 전쟁 경험에 대한 방향성을 제외하면...
경험 자체는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특별한 경험으로 간주되고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며, 아마도 현상적으로 민간 생활이 군대 환경보다 대체로 더 낫고 물질주의적 사고관이 사회의 주류를 이루는 한 앞으로도 상당 기간 동안은 이러한 관념이 유지될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댓글 없음:

댓글 쓰기

글에 대한 의문점이나 요청점, 남기고 싶은 댓글이 있으시면 남겨 주세요. 단 악성 및 스팸성 댓글일 경우 삭제 및 차단될 수 있습니다.

모든 댓글은 검토 후 게시됩니다.

Transl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