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후에 대한 오해와 진실


1. 서태후는 글을 읽지 못하였나요?

A: 사실 한자를 읽고 쓸 수 있었다고 해요. 전문적인 한문 교육을 받은 고급 지식인이었던 당대의 고위관료들만큼 문장을 잘 구사하진 못하였지만, 나름대로 조예가 있었고 부족한 부분들을 대우고자 틈틈히 노력했다고 합니다.
다만 청나라 관리들이 배우는 만주어를 배우진 못해 이 부분에 대해서는 번역해주는 사람이 필요하였죠.


2. 서태후는 개혁에 반대하였나요?

A : 서태후는 당시 기준으로 온건 개화파 정도에 속하였으며, 광서제의 개혁 정책도 실상 서태후의 영향을 받아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수구파를 정치적으로 견제하는 역할을 담당하였으며, 초창기 양무운동 등 근대화를 지시한 것도 서태후였으나 광서제의 보수적인 친정에 의해 악화되었다고 하더군요.


3. 서태후는 외국인들을 혐오하였나요?

A: 그다지 좋아했다고 볼 순 없지만 그래도 필요한 정도로는 수용하려고 노력하였다고 해요. 실제로 정부의 주요 직책에 몆몆 외국인들을 임명하기도 하였고 외국인들을 불러 친교를 다지려고 했다는 기록도 종종 보입니다.
의화단 당시 북경의 서구 조계지(대사관 지구)를 사실상 보호한 것도 서태후의 지시였다고 합니다.


4. 서태후의 이화원 예산은 국가를 좀먹을 정도였나요?

A : 서태후의 이화원 예산이 해군 예산에서 염출되었기에 나중에 크게 비판을 당한 케이스인데요. 사실은 해군의 이자수입만을 챙겨갔기에 해군 운영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그렇게 했다고 하네요. 다만 그렇다고 해도 군대 예산을 전용한 것 자체는 사실이며, 그 액수도 상당했기에, 원론적인 차원에서 비판이 잘못되었다고 볼 순 없겠지요.

댓글 없음:

댓글 쓰기

글에 대한 의문점이나 요청점, 남기고 싶은 댓글이 있으시면 남겨 주세요. 단 악성 및 스팸성 댓글일 경우 삭제 및 차단될 수 있습니다.

모든 댓글은 검토 후 게시됩니다.

Transl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