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취적인 제도와 포용적인 제도


Daron Acemoglu의 Why nations fail을 읽고 생각나서 정리하는 글입니다.

먼저 본 책의 내용에 대해 말하자면...
포용적 정치제도와 경제제도는 상호 선순환 관계이며, 포용적인 경제제도와 정치제도가 경제발전의 밑거름이 된다고 보더군요. 착취적인 경제제도와 정치제도 또한 선순환 관계와 비슷하게 상호 악순환 관계이며, 국가 발전의 밑거름이 된다 정도로 주장하더군요.

다만 이 책에서 의미있는 것은 그저 이것 뿐임을 확인하실 수 있는데요.
이 책은 착취적 제도와 포용적 제도 간에 변화할 수 있는 방법이나 변화 원인에 대한 이론이나 방법을 제시하고 있지 않고 있고. 이 책의 내용이 맞다면 거의 분명하게 둘 간의 전환은 여러 역사적 이벤트가 누적되어 만들어 진 우연에 불과한 것 같다고 보여지더군요.
또한 착취적인 제도와 포용적인 제도에 대해 명확한 분류 기준을 바탕으로 분류한 것도 아니어서, 대체로 서구인들이 흔히 하곤 하는 임의적인 분류에 따라 국가들을 분류한 걸 볼 수 있었습니다.

사실 북한과 같은 극단적인 독재 국가가 아니라면 어지간해서는 포용적 제도와 착취적 제도가 혼성이 되어 있고, 각 국가에서 이러한 제도의 혼성과(포용적 정책이 분야별로 적용된 정도) 발전된 분야가 꼭 같은 것은 아니라는 점도 있더군요.
이는 제도 이외에도 충분히 여러가지 변수가 있다는 이야기이며, 사회 현상을 단순변수로 치환하기 어렵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또한 인간의 특성상 인간은 이기적인 선택을 하게 마련이고... 대체로 엘리트층은 신뢰할 수 없으며 자기네들만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심지어는 가장 발전되고 평등한 국가라는 북유럽 복지국가들조차 상류층의 재산축적이나 보존에 별다른 제약이 없으며, 이와 대조되는 중산층 이하의 경우 노동 소득에서 40% 이상의 과도한 세율을 부담받더군요. 이는 상류층들에게 많은 어드밴티지를 주는 한편, 다른 사회계층의 활력을 빼앗는 장벽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비록 그것들 중 일부가 사회 안전망에 소모될지언정요.

이들 국가에서 경제활동의 자유도는 상당히 높지만, 어찌보면 결국 '그들만의 리그'용도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착취적 제도와 포용적 제도는 딱 잘라 분리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 수 있고, 가장 훌륭한 사회의 결과들조차 대부분의 결과물이 그저 우연 + 엘리트층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것을 선택한 결과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비엘리트층에게도 조금 관대하고 포용적인 사회 제도가 만들어지곤 하지만 항상 그렇다는 보장은 없다는 것입니다.

본 책에서 포용적 정치체제의 근원이라고 보는 정치권력의 다원화 또한, 당사자나 사회구성원들의 의도에 의해 구성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우연한 힘의 균형이나 사회적 변화에서 촉발되는 경우가 많더군요.
따라서, 포용적인 제도를 갖추기 위해서는 우연과 역사적 이벤트가 잘 맞아떨어져야 하며, 그마저도 북유럽처럼 '그들만의 다원화되고 자유로운 리그'가 되어버릴 가능성조차 높다는 걸 감안하면 결국 포용적 체제라는 것은 소수 운 좋은 국가와 시대의 전유물에 불과하지 않나 싶네요.

댓글 없음:

댓글 쓰기

글에 대한 의문점이나 요청점, 남기고 싶은 댓글이 있으시면 남겨 주세요. 단 악성 및 스팸성 댓글일 경우 삭제 및 차단될 수 있습니다.

모든 댓글은 검토 후 게시됩니다.

Transl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