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현대 이슬람 지하드주의의 태동과 역사


중동 현대 이슬람 극단주의의 역사를 되돌아보자면......
먼저 19~20세기 무렵 서구 세력이 중동 이슬람 지역의 상당수를 공격해 점령하였고, 근대 서구 사상이 전파되며 중동 지역에 근대적인 교육과 민족주의, 세속주의 사상을 가진 지식인 층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는 부분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네요.

이들 근대적인 지식인층은 20세기 초중엽 여러 아랍 국가군에서 세속주의 독재 지배 세력을 형성하기 시작하였고... 이는 과거 전통적으로 중동 사회를 지탱하던 수구 이슬람주의 세력이나 전근대적인 민중 세력과 갈등을 빚었습니다.


1928년 이집트에서 하산 알 반나에 의해 '무슬림형제단' 이 창설되었는데, 수에즈 운하에서 일하는 무슬림 노동자들의 차별을 보고 반식민 무슬림 계몽 운동의 일환으로서 방과후 어린이 교육 단체로 시작하였다고 하네요. 그러나 얼마 안가 성인 대상의 교육으로 확대되었고, 이는 당시 반서구 사상을 가지고 있었던 성인을 모이게 하는 결과를 낳았으며 얼마 안 가 무슬림 운동 결사체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풀뿌리 종교 교육 서비스와 정치운동이 결합한 형태인 무슬림형제단은 당시 민중들의 필요에 부합한 조직이었기에 얼마 안가 규모가 50만명 이상으로 매우 거대해졌고, 교육 시스템에서 정치 테러 단체에 이르기까지 온갖 활동을 포괄하는 조직이 되었다고 하네요.
그 결과 당시 세속주의 이집트 정부의 경계와 반감을 사게 되었습니다.

결국 '무슬림형제단'의 창시자 하산 알 반나는 이집트 정부에 의해 암살당하고..... 그의 정치적 사상적인 노선은 사이드 쿠틉이라는 사상가에 의해 계승되었습니다. 행동파였던 반나와는 달리 쿠틉의 경우 이론파에 더 가까웠는데, 반나의 죽음으로 생각을 바꾸어 무슬림형제단에 사상가로서 합류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무슬림형제단에서 활동하는 도중 세속주의자 나세르의 쿠테타에 협조하였지만 근본적으로 세속주의자였던 나세르와 같은 편이 될 수는 없었고, 결국 나세르가 정권을 장악한 뒤 무슬림형제단에 대해 대대적인 탄압을 가할 때 투옥되게 되었다고 하네요.


감옥에서 쿠틉은 '쿠란의 그늘에서'라는 제목으로 그의 사상을 정리한 논평집을 발간했으며, 나세르와 세속정부 세력에 대한 성전(지하드)을 주장하였다고 합니다. 그의 이러한 주장은 당시 세속정부에 대해 불만이 많았던 민중과 이슬람 구체제 세력에게 먹혀들어갔으며,  현대 이슬람 투쟁주의와 테러리즘(지하드주의)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는 현대 과학과 서구 사상을 부정하였고, 이슬람 세계 또한 신의 뜻을 따르는 세력과 자힐리야(야만적인 세력, 세속주의 당과 정부들을 의미)로 나뉘어진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서구 사상을 배격하고 자힐리야를 무찔러 신의 뜻에 따르는 세력이 지배권을 가져야 세상이 평화로워진다는 말도 안되는 망상같은 주장을 펼쳤지요.
그는 이 주장을 바탕으로 '진리를 향한 이정표'라는 선언문을 만들어 배포하여 선전선동을 시도하였으나, 그를 큰 위험분자로 파악한 나세르 정부에 의해 처형당하였습니다.

아이만 알 자와히리는 쿠틉의 제자였던 마푸즈 아잠의 조카로, 이집트 상류 계급 출신의 지식인이었습니다. 쿠틉의 사상을 따르는 지식인들의 대표격이었던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이슬람 국가 건설에 참여하는 비밀조직을 만들었으며, 얼마안가 이런 흐름은 이집트 대학 전역으로 퍼져서 수많은 아종 이슬람주의 조직을 만드는 데 큰 공헌을 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그가 만든 '알 지하드'라는 단체는 이슬람 지하드 무장투쟁 단체의 선조격 단체로서, 그가 카이로 의과대학을 졸업할 때 즈음이면 회원이 무려 50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그 와중에 아랍 - 이스라엘 전쟁이 터지고, 세속주의 아랍 정부 연합군은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참패를 하여 민중의 지지를 잃고 무능하다고 낙인이 찍히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승리에 대한 보복으로 아랍 산유국들은 석유 파동을 일으켰으며, 이스라엘의 군사적 공격에 맞서 팔레스타인에서는 '팔레스타인 해방기구'가 조직되어 저항과 테러 운동을 일으키게 되었지요.

팔레스타인 기구의 무력 저항 운동은 어느정도 성공을 거두었고...
석유 파동으로 많은 돈을 벌어들인 사우디 정부는 이슬람세계에서 자신들의 세력을 넓히기 위해 이슬람 지역 각지에 이슬람 교육 학교들을 세우고, 자신들의 극단적인 와하비즘 교리를 담은 쿠란을 세계 각지에 배포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사우디에 설립되는 여러 고등 교육 기관에 외국의 무슬림 사상가들이 들어와 교수 노릇을 하게 되었는데.. 그중에 하나가 쿠틉의 동생인 모하메드 쿠틉이었습니다.

사이드 쿠틉의 동생인 모하메드 쿠틉은 그의 형의 사상의 열렬한 신봉자였으며 킹 압둘아지즈 대학의 교수였는데, 교수로서 그의 형이 주장하였던 극단주의 이슬람 투쟁론을 대학에서 강의하였다고 합니다.

그의 설교를 대학에서 자주 들었던 학생이 '오사마 빈 라덴' 이었고.
그의 사상에 감명받아 테러조직 '알 카에다'를 창설하고 아프가니스탄에서 세속 사회주의 나지불라 정부를 상대로 현지의 반 사회주의 이슬람 투쟁 조직인 탈레반과 함께 투쟁에 나섰습니다. 
그 후의 모습은 2000년대 이후 911 테러를 비롯한 각종 중동발 테러 관련 뉴스에 나와 있고, 세계 각국이 대테러 작전과 안보에 힘쓰게 되는 결과를 낳았지요.


오사마 빈 라덴은 결국 2011년 미국의 넵튠 스피어 작전에 의해 사살되었지만, 그의 사상적인 후계자인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 등에 의해 ISIL이 창립되는 등 현재도 그 명맥이 다양한 이슬람 테러단체들로 계승되고 있습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

글에 대한 의문점이나 요청점, 남기고 싶은 댓글이 있으시면 남겨 주세요. 단 악성 및 스팸성 댓글일 경우 삭제 및 차단될 수 있습니다.

모든 댓글은 검토 후 게시됩니다.

Transl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