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 불매 운동이니 뭐니 하고 난리가 났는데(전 참여 안하고 있고 앞으로도 참여할 생각이 없습니다)... 이걸 거슬러 올라가 보니 2018년 10월자 신일철주금 배상 판결이 나오더군요.
내용 링크 : https://m.lawtimes.co.kr/Content/Article?serial=147822
위 판결에 따르면 한일기본조약상의 문구를 인정할 수 없다고 하고 있는데, 문제는 이게 법리적인 판결이 아니라 감정적이고 여론에 의해 형성된 판결이라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한일기본조약과 같은 국제 조약은 한번 체결된 이상 폐지하지 않는 한 유효하며, 제5항 '피징용한국인의 미수금, 보상금 및 기타 청구권의 변제청구'라는 항목에서 '피징용한국인'이라는 문구는 당연히 강제징용 대상자들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특히 배상이나 처벌과 같은 법리적 관계는 일사부재리의 원칙을 따르는데요.
당시 일본은 위 조약에서 배상금을 성실하게 지급하였으므로, 설령 한일기본조약이 폐지된다고 해도 다시 배상청구를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즉 1965년 이후로 일본은 식민지배에 대해 도의적인 책임은 지지만, 법률적인 책임은 이제 완료된 것이라고 볼 수 있지요.
위 판결에서 재판부는 '식민지배의 적법성'을 운운하고 있는데, 이것은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애초에 '식민지배가 적법한 통치행위'였을 경우 보상은 당연히 성립될 수 없고, 정당한 통치행위에 대한 배상관계란 존재할 수 없거든요. 명시적으로 인정되진 않았을 수도 있으나 이는 국가 간 자존심에 관한 것이고, 5항이 존재하는 이상 사실상(de facto)불법성을 간주/가정하고 협정을 맺었다고 볼 근거가 충분합니다.
적법한 통치행위라고 할 경우 긴급시나 전시의 노동력 동원과 징병에 대해 청구권을 가질 수 없으며, 애초에 5항이 존재하지 않았겠지요.
위 판결에서 법리적인 판결을 하고 있는 법관은 권순일, 조재연 대법관 뿐인 거 같네요.
암튼 이 판결이 나긴 했지만 일본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실질적인 집행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가.. 19년 6월부터 실질적인 집행이 이뤄지려고 하더군요. 그러나 이는 근본적으로 근대 법률의 기본 원칙(일사부재리의 원칙)과 외국인(일본인)의 사유재산권을 부정하는 심대한 공격이기 때문에, 일본 측에서 크게 반발하게 됩니다. 일본이 불화수소 등에 대해 수출을 금지한 것은, 이러한 불법적인 판결에 대한 반대 의사를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지요.
사실 이와 같은 판결은 선진 법치 문명국에서는 나올 수 없는 판결이기에, 어찌보면 일본이 하는 행동은 그렇게 틀린 행동이 아닐수도 있습니다.
이미 법리적으로는 보상금액과 함께 식민지배에 대한 보상권과 청구권 또한 한국 정부에게 넘어왔기 때문에, 한국 정부가 신일철주금 피해자에 대한 보상을 일본이 지급한 보상금액을 바탕으로 지급해야 합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1965년 기준으로 무려 8억달러의 지원과 차관을 받아놓고도)치졸하게도 4억원 정도를 지불하고 싶지 않아서 일본 기업에 멋대로 자신들의 보상의무를 불법적으로 떠념겼고, 결국 이런 사태에까지 이른 것이지요.
분명 아직도 일본이 식민지배와 전쟁범죄에 대해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있다는 건 분명하나, 법률적인 책임은 이미 완료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한국인들은 도의적인 책임과 법률적인 책임을 구분하지 못하고 한데 섞어 일본을 비난하는 데에만 열중하고 있더군요.
이는 현대의 상식 있는 문명인이라고 전혀 볼 수 없는 행동이며,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한 불매운동이니 뭐니 하는 것들도 제가 보기엔 터무니없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이 불매운동이 웃긴 이유를 들자면 굉장히 많이 들 수 있지만...
개중에서도 두드러지는 2가지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일본 내부의 정치적 역학관계와 현대의 글로벌 부품 조달 시스템을 이야기 할 수 있을 꺼 같네요.
일본의 아베 정권과 자민당의 정치 문화는 굉장히 보수적으로, 일본 기업가들의 요구사항을 제때 반영하지 못하며 이념적으로 치우친 경향을 많이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 일본 기업가들은 그다지 협조적이지 않고, 상당수의 일본 기업가들은 한국과의 관계 개선을 바라기도 하죠.
그러나 이러한 내부 역학 관계를 무시하고 무작정 일본 제품에 대한 불매를 할 경우 어떻게 될까요? 이런 상태가 오래 가고 그들의 매출에 역효과가 나게 되면, 그나마 한국에 우호적이고 관계 계선을 꾀하던 일본 기업들과 기업가들이 아베 편으로 돌아서서 일본의 극단적인 행동만 가속할 가능성이 높게 되는 것이지요.
결국 일본 내에서 아베의 입지만 튼튼하게 해 주는.. 남 좋은 일만 하는 결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 다른 문제는 글로벌 공급망에 관한 문제점이 있는데요... 사실 대부분의 일본 회사 제품이 일본산이 아닙니다.
오늘 제 지인이 롯데 불매 때문에 한산한 롯데마트에 가서 4900원에 통큰치킨을 사 먹었다고 하는데요.. 사실 이 '통큰치킨'의 제작과 판매 과정에서 일본산 재료와 일본인의 손길은 1도 안 닿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사실 이 치킨은 롯데 이름만 붙은 한국산이라고 볼 만한 근거가 아주 많이 있지요.
일단 치킨 원재료를 국내 업체에게서 제공받을 것이고, 기름 또한 원료 콩이나 옥수수를 외국에서 수입할지언정 국내 업자가 착유해서 롯데에 납품하는 물건일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그 치킨을 요리하는 사람은요? 외국에서 완제품 치킨을 수입하지 않는 한 아주 높은 확률로 한국인이겠죠. 그렇게 완제품 치킨을 외국에서 수입해봐야 신선도가 떨어지기도 하구요.
결국 이걸 불매하게 되면.... 치킨 만들고 팔아서 장사하는 한국인들이 큰 해를 입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치킨은 유통기한도 짧아서 재고로 두기도 어려우니 얼마나 골치아플까요?
그 외에도 일본여행이 줄어듬으로서 한국의 여행사들과 항공사들이 눈물의 원가 떨이를 하고 있고... 일본과의 거래를 통해 먹고사는 한국 사람들이 극심한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불매 운동이라는 게 결국 한국 사람들에게 피눈물로 돌아오니 굉장한 아이러니지 않나요?
그 외에도 한국에서 팔리는 여러 일본 메이커 공산품이라던가 하는 것들도.. 사실 절반 이상이 일본산이 아닙니다. 원가나 수입 비용 문제로 인해 상당수는 일본 메이커에 납품한 한국산이거나 혹은 제3국가의 제품인 경우가 많고, 한국까지 와서 장사하는 일본 소재 글로벌 메이커들은 글로벌 공급망과 판매망을 가지고 있어 일본인들이 관여하는 부분은 극히 일부분입니다.
도리어 일본 브랜드에 대한 불매로 인해 일본 브랜드 공급망에 매달려 먹고 사는 한국인들이 거래취소나 거래량 감소라는 충격을 먹을 확률이 높고, 이로 인해 많은 한국인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 나라에서 완전히 생산하고 완제품만 딱 수출하던 20세기 초의 초보적인 자본주의 시대와 달리, 21세기 자본주의와 제품 공급망은 글로벌 국제망을 형성하고 있어서 아무거나 마음대로 잘라낼 수 없지요.
다른 한편으로는 그 '모나미 볼펜'의 촉에도 일본산 잉크와 펜 볼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고, 한국이 자랑하는 각종 첨단장치와 기계장치에도 일본제가 많이 들어갑니다.
삼성의 최첨단 OLED 색소자 원료는 거의 다 일본에서 수입해오는 사실을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고급소재사업은 아주 이익이 많이 남는 분야라 일본인들 역멋이는 가장 빠른 지름길은 갤럭시 불매일 수도 있습니다. 듣는 입장에서는 놀랍게 생각되는 일일 지는 모르겠지만요.
위의 글을 정리해보자면....
한국의 신일철주금 배상 관련 판결은 근대 법률의 기본원칙을 위반하는 등 불법적인 요소가 있으며 올바르지 않다. 일본이 식민지배와 전쟁범죄에 대해 도의적인 책임을 가진 것은 맞으나, 법률적인 책임은 완료되었기에 이번의 법적 배상 문제에 대해 과거의 도의적인 차원의 갈등과는 다르게 심하게 반발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불매운동은 참으로 어리석고 근시안적인 생각이다.
현대 자본주의는 글로벌 부품망을 바탕으로 움직이기에, 아무거나 멋대로 불매했다가 그걸로 생계를 유지하던 한국인들만 피눈물을 흘리는 수가 있다는 것. 심지어 일본여행조차도 그렇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 한국 정부는 왜 이리 강경하게 나가는 걸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법리적으로는 올바르지 않고 갈등의 소지가 될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미 불매운동까지 벌어지고 온갖 난리가 일어나는 상황이니 호랑이 등에 탄 거나 마찬가지인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고 끝까지 가서 망하던가 하는 것 이외에는 길이 없기 때문에, 이 기회에 목소리나 내보고 죽자일 수도 있습니다. 현 정권 인사들 중 상당수가 법률가 출신인데 이런 걸 모를리는 없으리라고 생각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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