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사상은 크게 무아설과 윤회설을 핵심으로 가지고 있는데요.
근본적으로 무아설이란 연기법의 원리에 의해 '나'라는 건 여러 연기에 의해 일시적으로 모여서 구성된 것에 불과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므로 '나'라는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무상-고-무아와 같은 말도 여기서 나오는 것이며, 그러므로 모든 고통과 집착의 근원이 되는 '나'의 존재에 대한 집착을 버려 고통을 없애고 열반에 들자는 것이 불교의 핵심 교리이지요.
그러나 여기에서 만약 '나'가 여러 연기에 의해 일시적으로 모여서 구성된 것이라면...
결국엔 그 연기가 흩어지는 순간 중 하나인 사망을 통해서 결국 흩어지는 게 아니냐, 그러면 결국 그냥 현생에서 잘먹고 잘살면 되지 구태여 어렵개 욕망을 없애는 수련을 할 필요가 있냐 이런 논리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주장을 비판하고(단멸론에 대한 비판), 그 부분에 대한 설명을 하기 위해 도입된 핵심교리가 윤회설인 것이지요. 그러나 기본적으로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설이란 다음생에 카르마(업)에 대한 댓가를 치룬다는 '과보설'을 중심으로 하고 있기에 전자와 후자는 논리적으로 충돌할 수 밖에 없다고 보더군요.
이러한 논리적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불교에서는 윤회에 대해 3가지의 보완 학설을 내세웁니다. 바로 뿟갈라설과 식설, 상속설입니다.
뿟갈라설 - 5온과 같은 것은 아니면서도 다른 것은 아닌, '나'는 아닌 윤회의 주체가 있다는 것입니다. 당연하게도 이는 기존 힌두교의 아트만(나)과 거의 유사한 의미였으므로 초기불교 시절부터 반박되었습니다.
식설 - 5온의 구성요소 중 하나인 식은 크게 정신현상으로서의 식과 윤회의 주체로서의 식이 존재한다. - 이 부분은 초기불교에서도 일부 경전에서 인정하고 있지만, 식설을 부정하고 5온의 정신현상에 국한하는 해석이 있어서 반발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상속설 - 카르마의 행위와 결과는 인과법에 의해 '상속'된다는 것으로서, 카르마을 생성한 이전의 오온(존재), 카르마의 결과로 형성된 오온(존재)는 연속되지 않고 완전히 서로 다른 것이지만 후자는 전자의 오온이 발생시킨 카르마에 대해 연기법적 결과물이라는 논리.
다만 상속설의 경우 '나'라는 대상이 연속적이지 않고 전생의 나와 지금의 나가 완전히 다른 존재이니만큼, 다음생에 그 과보를 치룬다는 자업자득의 원리, 과보설과 충돌하는 면이 있다고 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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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과보설과 선악단순논리에 대한 비판]
다만 제가 과보설까지 모두 살펴보고 생각해본 결과, 불교의 전통적인 과보설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고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유는 1. 현생에서 카르마의 영향(혹은 댓가)을 받지 않고 다음생에 열매로서 작용한다고만 본 것, 2. 선악이 실재하며 선한 자는 복을 짓고 악한 자는 지옥에 떨어진다고 주장한 것 때문에 그렇습니다.
또한 다른 한편으로는 카르마의 연기적인 해석을 정신특성과 현상에 이르는 광범위한 특질의 변화로 해석하지 않았고.... 그저 [다음생], ['현상'으로서 정해진 결과가 이어지는 것]으로만 한정지어 카르마의 영향성을 따졌기에 이런 치명적인 실수를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있네요.
먼저 애초에 '카르마'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데요.
카르마라는 건 무슨 죄니 복의 근원이니 하는 거창하고 대단하고 초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간단하게 말하자면 과거의 행동, 사고, 말, 의도가 합쳐저서 정신적 경향성을 이룬 것이 '카르마'입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이번생에 한 행동, 사고, 말, 의도는 당연히 이번생의 정신적 경향성을 이루는 한 구성요소가 되구요. 그로 인해 미래에 할 행동, 사고, 말, 의도가 일정 부분 조건지워지기에, 이번생에 형성된 카르마는 이번 생에 당장 그 영향을 받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개중에 큰 것은 죽음을 넘어 다음 생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지만, 다음 생에 이로 인해 반드시 전생의 과보로 인한 '특정한 현상'이 일어난다던가 하는 것은 아니지요.
여러 대중종교들이 카르마에 대한 정의를 수세기가 넘도록 제대로 내리지 못하고 엉뚱한 소리들을 한 것은, 명확한 근거는 없지만 카르마란 은연중 초상적이고 내세에 영향을 가지는 것이라고 믿은 점이 큽니다. 그로 인해 대중에게는 엄청난 오해를 사게 만들었으며, 카르마란 관찰과 실험으로 증명하기 어려운 추상적이고 어려운 무언가가 되어버렸습니다.
카르마의 형성, 파괴에 대한 관찰 실험은 사실 약간의 의지력만 가지고 있으면 가능하며, 정신에 어떠한 영향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관찰해볼 수 있습니다. 사실 인간 카르마의 최하위 행동구성양식은 매우 단순하고, 조건반사와 크게 다를것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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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 발생 실험]
준비물 - 맥도널드 해피밀 세트를 1달간 꾸준히 구입
맥도널드 해피밀 세트를 저녁으로 먹게 되면 매일 장난감을 하나씩 받을 수 있고, 칼로리도 그닥 많지 않고 가격도 크게 비싸지 않으니 실험으로서 시도해볼 만 한데요. 이런 식으로 1달 정도를 하다 보면, 몸이 조건반사적으로 새 장난감을 받기 위해 별도로 생각을 하지 않아도 맥도널드에 가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살면서 일정한 패턴을 반복하다 보면, 행동과 사고에 영향을 끼치는 경향성이 형성되는 것이지요.
이런 식으로 특정한 행동이나 사고가 패턴화돠고 그것이 사고와 행동에 영향을 끼치는 것 = 카르마의 형성입니다.
[카르마 제거 실험]
준비물 - 의지력, 자기최면
이젠 위에서 형성된 맥도널드와 관련된 조건반사적인 행동-사고 양식을 제거해봅시다.
처음에는 맥도널드에 매일 간다는 것을 인지하는 연습을 일주일 정도 시행해서, 자기가 매일 저녁에 무엇을 하는지 관찰하는 습관을 들일 필요가 있는데요. 이는 의식적인 관찰을 통해 행동양식을 제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다음에는 맥도널드 해피밀 - 살찐다라던가, 장난감에 대한 집착이라는 꼬리표를 붙여서 부정적인 형상이 생각나도록 훈련합니다. 구체적인 방법은 이는 부처가 이야기한 부정관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으니 이쪽을 참고하시는 걸 추천합니다.(본 블로그에도 관련 글이 있습니다.) 또한 그런 생각을 함과 동시에 맥도널드로 가는 발걸음을 인지하고 의지력으로 거부하는 훈련을 하세요.
수행 도중에 먹는 즐거움, 장난감 받는 즐거움을 억제하는 스트레스나 거부감이 들 수도 있지만, 부정관을 활용해서 제거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이런 훈련을 1달 정도 반복하면 의지력이 있는 수행자는 위에서 형성된 행동패턴 - 카르마를 제거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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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카르마라는 것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며, 이미 현생의 행동양식과 사고방식을 결정하는 큰 틀이기에 다음생에 가서야 과보를 받는다는 것은 틀린 주장이 됩니다.
선악단순논리에 따른 과보이론은 근거가 전혀 없는 터무니없는 소리로, 애초에 선악이라는 것 자체는 인간이 멋대로 정한 것일 뿐 우주의 법칙으로 지정된 것은 아닙니다. 그것이 만약 우주의 절대적인 법칙이라면 '살인'과 같은 건 애초에 실행이 불가능한 것이었겠지요.
우주의 법칙과는 상관없는 인간의 근거없는 선악망상을 근거로 하여 지옥이니 내생의 복이니 하고 멋대로 정해버렸으니.... 당연히 세상에서 발생하는 현상과 맞을리가 없었고, 이로 인해 교리 전체가 뒤틀리게 되어버린 것 같더군요. 또한 맞지 않는 가설을 설명하기 위해 더욱 복잡한 ad-hoc 가설을 사용해야 하니, 시간이 지날수록 논리구조만 복잡해질 뿐 도무지 이해 불가능한 수준에 이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일반적인 이해능력을 가진 중생이나 땡중들 지능 수준에서는 이런 종류의 과보설, 선악관이야말로 다른 불교논리나 사상보다 이해하기 쉬웠을 터이므로, 과보설-선악관에 집착하고 이를 절대적인 것이라고 받아들인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되기는 하네요. 어찌 보면 이는 본능적으로 가장 이해하기 쉬운 것부터 챙기는 인간의 습성이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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