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서 주장하는 유신견 개념을 테세우스의 배 논쟁에 적용시켜 보니, 태세우스의 배 관련 논쟁이 바로 풀리기에 정리해봅니다.
[테세우스의 배 논쟁]
[미노타우르스를 죽인 후 아테네에 귀환한 테세우스의 배를 아테네인들은 팔레론의 디미트리오스 시대까지 보존했다. 그들은 배의 판자가 썩으면 그 낡은 판자를 떼어버리고 더 튼튼한 새 판자를 그 자리에 박아 넣었던 것이다.
커다란 배에서 겨우 판자 조각 하나를 갈아 끼운다 하더라도 이 배가 테세우스가 타고 왔던 "그 배"라는 것은 당연하다. 한 번 수리한 배에서 다시 다른 판자를 갈아 끼운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로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계속 낡은 판자를 갈아 끼우다 보면 어느 시점부터는 테세우스가 있었던 원래의 배의 조각은 하나도 남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배를 테세우스의 배라고 부를 수 있는가?]
이 논쟁을 불교철학의 관점에서 보면, 고정된 형상의 '테세우스의 배'가 있다는 주장은 넌센스이며, 잘못된 인식(유신견)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저 나무판자로 구성된 배(현상)가 하나 있는 것일 뿐.
세상의 만물은 끊임없이 변화무쌍하다는 것이 본질이므로, 배를 구성하고 있는 나무판자가 전부 다 바뀌더라도 내부 구성요소가 바뀐(변화한) 나무배가 하나 있는 것 뿐입니다. 여기서 '테세우스의 배'같은 고정된 실체를 찾으려는 것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지요.
참고링크 : https://namu.wiki/w/%ED%85%8C%EC%84%B8%EC%9A%B0%EC%8A%A4%EC%9D%98%20%EB%B0%B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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