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석가모니가 발견한 것들 중 핵심은 연기법이며, 나머지 사성제나 팔정도 12연기와 같은 것들은 고통의 종식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연기법을 응용해서 설명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연기법 요약]
원인이 있으면 결과도 있다. (이것이 있으면 저것도 있다.)
원인이 없으면 결과도 없다. (이것이 없으니 저것도 없다. 이것이 사라지니 저것도 사라진다.)
모든 존재는 상호관계에 의해 존재하기도 하고 소멸하기도 한다.(상의성의 법칙)
모든 존재는 우연히 존재하는 것이 없고, 반드시 원인이나 조건이 존재한다.
모든 존재는 상호관계에 의해 존재하기도 하고 소멸하기도 한다.(상의성의 법칙)
모든 존재는 우연히 존재하는 것이 없고, 반드시 원인이나 조건이 존재한다.
현대 서양 과학의 인과법칙과도 비슷하다고 여겨지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원인을 바탕으로 결과가 있고 그 결과가 새로운 원인이 되어 이어지는 과정이 영속적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근본 원리를 바탕으로 석가모니는 다음과 같은 세상의 근본 원리를 파악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생성을 원인으로 소멸이 존재하고, 소멸을 원인으로 생성이 존재한다. 따라서 생물은 태어나고 죽으며 또한 죽고 태어난다 = 윤회법칙'
이에 근거하면 생물은 태어나서 죽고, 죽은 뒤에는 다시 태어나며
삶에는 고통을 원인(조건)으로 행복, 사랑과 같은 것이 존재하고 생로병사의 고통이 있기에, 결국 진리를 알고 수행하여 윤회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고통을 종결시킬 수 있다는 것이 석가모니의 최종적인 결론입니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연기법을 설명한 것이 12연기입니다.
[12연기]
무명 - 연기법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 세상의 근본 법칙에 대한 무지
행 - 무지를 바탕으로 하는 어리석은 행위, 신/구/의
식 - 행을 바탕으로 형성되는 마음의 잠재적 경향성(카르마, 혹은 영혼과 비슷한 것)
명색 - 식을 바탕으로 몸(물질)과 수상행이 생겨나는 것 - 식 -> 명색을 통해 생물은 윤회를 반복한다.
육입 - 몸에 달린 눈귀코혀몸뜻이라는 6가지 감각처리기관, 인식기관, 인식방법 - 세상에 대한 왜곡된 정보작용을 하게 한다.
촉 - 육입의 작용을 통해 발생하는 접촉 감각
수 - 색수상행식의 2번째 요소 - 촉(접촉)을 통해 발생하는 느낌, 지각, 정서
애 - 수에서 발생한 느낌, 지각, 정서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으려 하는 것.
취 - 애의 작용으로 느낌 지각 정서를 자신을 위해 잡아서 취하고 놓지 않는 것, 집착
유 - 존재에 대한 집착, 오온에 대한 집착, 자신에 대한 집착 등 취(집착, 집념)의 작용이 모여 존재의 개념을 낳고 이에 대해 집착하는 것.
생 - 존재(오온)에 대한 집착으로 윤회하여 태어나게 된다.
노병사(고) - 태어남으로 인해 늙고 병들고 죽고 온갖 고통을 겪는다.
요약하자면 연기법과 세상의 법칙에 대한 무지가 부정적 카르마를 낳고, 이는 잘못된 감각작용과 존재(오온)에 대한 집착을 낳아 세상에 무한윤회하고 고통받는다는 것. -> 연기법을 깨닫고 이를 통해 올바른 인식을 가지고 그릇된 집착을 없앤다면 더이상 윤회고통받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
참고자료 : https://ko.wikipedia.org/wiki/십이연기설
또한 이를 바탕으로 연기법을 설명한 것이 12연기입니다.
[12연기]
무명 - 연기법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 세상의 근본 법칙에 대한 무지
행 - 무지를 바탕으로 하는 어리석은 행위, 신/구/의
식 - 행을 바탕으로 형성되는 마음의 잠재적 경향성(카르마, 혹은 영혼과 비슷한 것)
명색 - 식을 바탕으로 몸(물질)과 수상행이 생겨나는 것 - 식 -> 명색을 통해 생물은 윤회를 반복한다.
육입 - 몸에 달린 눈귀코혀몸뜻이라는 6가지 감각처리기관, 인식기관, 인식방법 - 세상에 대한 왜곡된 정보작용을 하게 한다.
촉 - 육입의 작용을 통해 발생하는 접촉 감각
수 - 색수상행식의 2번째 요소 - 촉(접촉)을 통해 발생하는 느낌, 지각, 정서
애 - 수에서 발생한 느낌, 지각, 정서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으려 하는 것.
취 - 애의 작용으로 느낌 지각 정서를 자신을 위해 잡아서 취하고 놓지 않는 것, 집착
유 - 존재에 대한 집착, 오온에 대한 집착, 자신에 대한 집착 등 취(집착, 집념)의 작용이 모여 존재의 개념을 낳고 이에 대해 집착하는 것.
생 - 존재(오온)에 대한 집착으로 윤회하여 태어나게 된다.
노병사(고) - 태어남으로 인해 늙고 병들고 죽고 온갖 고통을 겪는다.
요약하자면 연기법과 세상의 법칙에 대한 무지가 부정적 카르마를 낳고, 이는 잘못된 감각작용과 존재(오온)에 대한 집착을 낳아 세상에 무한윤회하고 고통받는다는 것. -> 연기법을 깨닫고 이를 통해 올바른 인식을 가지고 그릇된 집착을 없앤다면 더이상 윤회고통받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
참고자료 : https://ko.wikipedia.org/wiki/십이연기설
석가모니는 연기법을 깨달은 뒤 고통을 초래하는 인간의 정신작용에 대해 다방면으로 연구를 수행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 결과물이 인간의 정신을 설명하는 [오온]과 [오욕칠정], 그리고 이러한 오온작용에 대한 통제를 바탕으로 부정적 카르마를 일소하여 윤회전생을 일소하는 방법론[사성제, 팔정도]을 정립한 것으로 보입니다.
먼저 [오온(五蘊)]에 대해 말하자면...
석가모니는 오온을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의 5구조로 분석을 하였습니다.
색(色) - 물질계에 존재하는 물질과 육체
수(受) - 색(色)의 작용에서 기인한 느낌
상(想) - 수(受)의 작용에서 생겨난 생각
행(行) - 상(想)에서 기인한 정신적 활동, 행동, [의지의 발현]
신, 구, 의의 3가지 행(行)으로 나타난다.
신 - 행동
구 - 말
의 - 의도, 카르마의 형성에는 의도가 가장 큰 영향을 끼친다.
식(識) - 행(行)에서 기인하여 생겨나는 마음작용(의사결정, 판단), 또는 마음작용에 대한 잠재적 경향성
색수상행식 각 단계는 이전 단계를 원인(조건)으로 해서 발생합니다.
몸인 [색(色)]을 바탕으로 마음 [식(識)]이 존재하고, 생겨난 것은 소멸하며 또한 소멸을 조건으로 생성이 있기 때문에 살고 죽으며 죽고 사는 윤회관계가 형성된다고 보았습니다.
몸인 [색(色)]을 바탕으로 마음 [식(識)]이 존재하고, 생겨난 것은 소멸하며 또한 소멸을 조건으로 생성이 있기 때문에 살고 죽으며 죽고 사는 윤회관계가 형성된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색(色)이 소멸하면 수상행식도 따라서 소멸하고.
소멸한 것은 다시 생겨난다는 인과법 원리에 따라 기존의 생(삶-오온의 존재)을 원인으로 하여, 새로운 색수상행식이 형성되어 새 삶을 살아가는 것. 이런 식으로 이어지는 생명체의 관계는 영속적이면서도 영속적이지 않다는 개념이 석가모니의 주장(둘 중 하나로 딱 나누어 정의할 수 없다.)
소멸한 것은 다시 생겨난다는 인과법 원리에 따라 기존의 생(삶-오온의 존재)을 원인으로 하여, 새로운 색수상행식이 형성되어 새 삶을 살아가는 것. 이런 식으로 이어지는 생명체의 관계는 영속적이면서도 영속적이지 않다는 개념이 석가모니의 주장(둘 중 하나로 딱 나누어 정의할 수 없다.)
동시에 삶에는 생로병사의 고통과 오욕칠정의 원인과 결과로 고통이 있으므로 고통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 있습니다.
[오욕칠정]
색(몸)에 달려있는 눈, 코, 귀, 혀 몸의 다섯 가지 감각기관[오관(五根)]으로 인해, 각각 빛(色), 냄새(香), 소리(聲), 맛(味), 만지는 느낌(觸)의 오경(五境)에 집착하여 욕망과 감정이 야기되는데 이를 오욕칠정이라고 하더군요.
[오욕 - 5개의 욕망]
재물욕(財物慾)
명예욕(名譽慾)
식욕(食慾)
수면욕(睡眠慾)
색욕(色慾)
[칠정(七情) - 7개의 감정]
희(喜) - 기쁨
노(怒) - 노여움, 분노
애(哀) - 슬픔
낙(樂) - 즐거움
오(惡) - 미움
욕(欲) - 욕망
애(愛) - 사랑
아라한을 제외한 일반적인 인간은 오관의 작용에 의해 저 오욕칠정에 따르는 행동을 추구하게 됩니다.
오욕칠정의 작용은 영속적이지 않고 고통에 대해 원인과 결과가 되므로, 결국 고통의 또 다른 모양에 지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석가모니는 이러한 오욕칠정으로부터 자유롭고자 하였고, 이에 대해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한 것이 사성제와 방법론에 해당하는 팔정도입니다.
[사성제 요약]
먼저 석가모니 사상의 핵심인 사성제는 고, 집, 멸, 도(苦, 集, 滅, 道)라는 4단어로 요약되지만, 대승불교와 같은 변이된 후대의 불교집단에 의해 이상하게 가르침이 변질되어서 원래의 의미와는 상당히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초기 경전 중 하나인 투쟁과 논쟁의 경을 참고해 보면, 현대 대승불교가 주장하고 있는 사성제와는 의미가 조금 다른 것이 보여지며, 그 부분에 대해 정리해봅니다.
고(苦) - 생물의 삶은 생로병사의 고통과 투쟁, 논쟁, 비탄, 슬픔, 인색, 자만, 오만, 중상과 같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
집(集) - 흔히들 고(苦)의 원인은 집착이라고 하지만 이는 조금 와전된 것인데요. 집(集)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고통에는 여러 원인이 있고, 이러한 것들이 연기법에 따라 모여 고통을 만들어낸다는 이야기입니다.(가장 큰 원인이 집착) 크게는 감각에 대한 집착(오욕칠정), 존재(오온)에 대한 집착과 비존재에 대한 집착으로 볼 수 있습니다.
멸(滅) - 대승불교에서는 고통은 멸할 수 있다라고 정의하고 있으나, 투쟁과 논쟁의 경에 따르면 [“지각에 대한 지각도 여의고, 지각에 대한 잘못된 지각도 여의고, 지각이 없는 것도 아니고 지각이 소멸된 것도 아닌, 이러한 상태에 도달한 님에게 물질적 형상도 소멸합니다. 왜냐하면, 지각을 조건으로 희론적 다양성이 성립하기 때문입니다.”]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는 아라한의 경지를 말하는 것인데요.
지각이 없는(죽은)자가 아니면서도 동시에 감각에 대한 집착과 존재(오온)에 대한 집착, 비존재에 대한 집착과 이에 대한 자각을 떨쳐버린 상태에서는(죽은 자가 아니면서도 색수상행식 오욕칠정으로부터 자유로워 사실상 살아있으면서도 죽은 것과 마찬가지인 상태). 물질적인 형상과 업에 따른 고통을 유발하는 상호작용이 없으므로 고(苦)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지각이 없는(죽은)자가 아니면서도 동시에 감각에 대한 집착과 존재(오온)에 대한 집착, 비존재에 대한 집착과 이에 대한 자각을 떨쳐버린 상태에서는(죽은 자가 아니면서도 색수상행식 오욕칠정으로부터 자유로워 사실상 살아있으면서도 죽은 것과 마찬가지인 상태). 물질적인 형상과 업에 따른 고통을 유발하는 상호작용이 없으므로 고(苦)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도(道) - 일반적으로 8정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으나, 구체적으로는 연기법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부정적 카르마를 제거하여 윤회전생(苦)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방법론을 이야기합니다. 이를 확장해서 정리한게 팔정도입니다.
다만 이를 요약 정리하는 과정에서의 혼선으로 인해, 후대의 대승불교에서는 이상하게 정도를 수련하면 고통이 없어진다는 말로 뭉뚱그려 정리하는 것 같더군요.
다만 이를 요약 정리하는 과정에서의 혼선으로 인해, 후대의 대승불교에서는 이상하게 정도를 수련하면 고통이 없어진다는 말로 뭉뚱그려 정리하는 것 같더군요.
구체적으로는 연기법에 대한 이해 -> 행온작용(의도가 있는 생각, 말, 행동)을 연기법에 맞추어 통제하여 고통의 원인을 제거하는 수련을 행하는 것
구체적인 방법은 위따까(불러일으킨 생각)/위짜라 + 쌈빠자나의 수련을 통해 단계적으로 성취합니다.
쌈빠자나 - 현재 자신이 하는 행동, 생각, 말[행(行)]에 대해 '명확히 인지'하는 수련을 의미합니다.
위따까(사유) - 수련을 위해 특정한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것, 기본적으로는 관찰을 통한 수행을 하는 것이지만 수련을 위해 생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위짜라(숙고) - 쌈빠자나를 통해 인지된 생각(혹은 위따까로 불러일으켜진 사유), 행동, 말[행(行)]이 연기법에 비추어 보았을 때 고통을 초래하는 불선업(부정적 카르마)인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 중립적, 혹은 선업(긍정적 카르마)인가를 판단해 보는 것. 불선업일 경우에는 억제, 폐기하고 선업일 경우에는 유지, 증강해야 합니다.
불선업 - 고(苦)를 초래하는 원인(빛(色), 냄새(香), 소리(聲), 맛(味), 만지는 느낌(觸)에 대한 집착 - 오욕칠정 + 존재(오온)에 대한 집착, 비존재에 대한 집착)을 따르는 것. 결과론적으로 윤회세계에 집착하는 결과를 낳아 윤회하게 되는 원인이 된다.
불선업과 관련해서 가장 큰 문제는(빛(色), 냄새(香), 소리(聲), 맛(味), 만지는 느낌(觸))을 죄다 충족시키는 색욕(色慾) - 성욕이며, 이는 윤회세계를 유지하는 근간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수행자가 섹스를 했다는 것에 대해 석가모니가 크게 분노하였고, 수행자는 성관계를 가져서는 안된다는 최초의 계율과 바라이죄(수행자 집단에서 영구 추방)라는 개념이 생겨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선업 - 고(苦)를 초래하는 원인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고(苦)를 초래하는 원인과 상관 없는 것.
위따까의 종류에는 호흡관, 부정관(혹은 사띠), 무상관, 자애관이 있습니다.
호흡관 - 호흡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관찰(쌈빠자나) 하는 것. 가장 직접적인 카르마 제거 수행은 사띠(부정관)이나, 부정관 수련만을 항상 하는 것은 심신을 피곤하게 하므로 석가모니가 일종의 휴식 수련? 의 개념으로 제창한 것.
부정관(+사띠) - 오욕칠정, 오온에 대한 집착 등이 연기법에 비추어 무의미함을 새기는 것.
사띠는 부정관을 좀 더 직접적으로 윤회와 고에 연관지어 활용하는 것(오온과 육문십이처십팔계의 연기작용을 새김으로써 이 작용이 얼마나 기계적이고, 조건반사적이고, 로봇같고, 매력없는지, 그리고 이를 따를 경우 그 행온行의 결과 식온識을 거쳐 다음 번 명색名色에 입각한 오온으로 또 윤회의 챗바퀴를 돌며 사고四苦팔고八苦를 맛보아야 함을 숙고)
무상관 - 불선업의 행에 대해 이러한 것은 무의미함, 아무 것도 아님을 새기는 것
자애관 - 분노, 다른 존재에 대한 공격의 의도, 질투의 의도가 들었을 때 자신과 타인과 주변에 대해 자비로운 마음으로 부정적 행온을 상쇄하는 것을 의미한다.
[어미가 하나 뿐인 자식을 목숨을 걸고 보호하듯이 아끼는 자애의 마음을 일으켜 동서남북상하 육방으로 향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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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일반적인 수련방식인 위빠자나와 간화선은 둘 다 불완전한 수련 방식이며, 위빠자나는 특정한 대상에 대한 마음집중+ 위의 항목 중 알아차림(쌈빠자나)에만 특화되어 있는 반쪽짜리이며, 간화선은 아예 부정적인 카르마 제거와 관계가 없습니다.
위빠자나 요약 : http://www.bulgyofocus.net/news/articleView.html?idxno=58407
현대의 일반적인 수련방식인 위빠자나와 간화선은 둘 다 불완전한 수련 방식이며, 위빠자나는 특정한 대상에 대한 마음집중+ 위의 항목 중 알아차림(쌈빠자나)에만 특화되어 있는 반쪽짜리이며, 간화선은 아예 부정적인 카르마 제거와 관계가 없습니다.
위빠자나 요약 : http://www.bulgyofocus.net/news/articleView.html?idxno=58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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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석가모니의 이론에 따르면 연기법을 이해하지 못하면 불선업과 선업을 구분할 수 없고. 대개의 인간들은 연기법에 대한 이해가 없기에 자연스레 불선업을 행하게 됩니다. 따라서 석가모니는 진리를 알지 못하는 인간들은 필연적으로 고통과 윤회로 향하게 된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연기법에 대해 이해하고.
자신의 행동에 대해 정확히 관찰한 뒤, 연기법에 맞추어 행을 숙고하여 단계적으로 부정적 카르마를 없애는 방법이 사성제에서의 도의 의미입니다. 이를 8개의 항목으로 나눈 것이 팔정도이고요.
[팔정도 요약]
[팔정도 요약]
1) 정견 : 바른 견해로 편견없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 - 연기법을 알고 이에 따라 세상을 연기법의 이치에 맞추어 바라보는 것을 말합니다.
2) 정사유 : 바른 생각
3) 정어 : 바른 말이다.
4) 정업 : 바른 행동이다.
5) 정명 : 바른 생활이다.
(2~5)번 항목은 법의 수행(쌈빠자나, 위따까/위짜라)을 통해 얻어지는 선업의 증장과 불선업의 억제, 폐기를 거쳐 나타나는 행에 대해 다스리는 것을 말합니다. 각각 행의 신/구/의와 종합적인 생활에 해당하는 덕목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2~5번은 도덕적인 생활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실질적인 의미는 조금 다르며, 기본적으로 고를 줄이려는 방향의 노력(최종적으로는 윤회전생의 종결) = 선행이라는 점에서 중생의 도덕과는 궤를 달리합니다.
또한 이러한 행은 통찰(정념)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기에, 대승불교가 주장하는 계(戒)[3,4,5번] -> 선정(禪定)[7,8]번의 순서가 아니라, 올바른 법에 대한 이해(정견) + 정념(7번)의 노력을 통해 올바른 행(계(戒))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물론 2가지에 대해 중요성의 우열을 따질 수 없고 실질적으로는 거의 동시에 일어나지만, 논리관계상으로는 분명 대승불교가 주장하는 것과 반대입니다.
6) 정정진 :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는 쉼없는 선한 노력을 말한다.
7) 정념 : 바른 마음 챙김이다. - 행으로 나타나기 전의 여러 생각과 의도에 대해 연기법의 원리에 맞춰 위따까(불러일으킨 생각)/위짜라 + 쌈빠자나의 수련을 통해 선업을 유지, 증장하고 불선업을 폐기 억제하는 수련을 말합니다.
이러한 수행을 잘 거쳐서 나가는 행에 대한 수련은 자연스럽게 (2~5)번 행에 관한 수련이 됩니다.
8) 정정 : 바른 선정 - 1~7번의 수행을 잘 한 끝에 얻어지는 마음의 고요함과 기쁨을 말합니다. 불교에서는 단계적으로 초선 ~ 4선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대승불교 비판(팔정도, 명명, 윤회전생의 측면에서)]
다만 여기서 주의해야 하는 것은, 대승불교에서 주장하는 팔정도는 상당히 왜곡된 부분이 많습니다.
2) 정사유 : 바른 생각
3) 정어 : 바른 말이다.
4) 정업 : 바른 행동이다.
5) 정명 : 바른 생활이다.
(2~5)번 항목은 법의 수행(쌈빠자나, 위따까/위짜라)을 통해 얻어지는 선업의 증장과 불선업의 억제, 폐기를 거쳐 나타나는 행에 대해 다스리는 것을 말합니다. 각각 행의 신/구/의와 종합적인 생활에 해당하는 덕목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2~5번은 도덕적인 생활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실질적인 의미는 조금 다르며, 기본적으로 고를 줄이려는 방향의 노력(최종적으로는 윤회전생의 종결) = 선행이라는 점에서 중생의 도덕과는 궤를 달리합니다.
또한 이러한 행은 통찰(정념)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기에, 대승불교가 주장하는 계(戒)[3,4,5번] -> 선정(禪定)[7,8]번의 순서가 아니라, 올바른 법에 대한 이해(정견) + 정념(7번)의 노력을 통해 올바른 행(계(戒))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물론 2가지에 대해 중요성의 우열을 따질 수 없고 실질적으로는 거의 동시에 일어나지만, 논리관계상으로는 분명 대승불교가 주장하는 것과 반대입니다.
6) 정정진 :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는 쉼없는 선한 노력을 말한다.
7) 정념 : 바른 마음 챙김이다. - 행으로 나타나기 전의 여러 생각과 의도에 대해 연기법의 원리에 맞춰 위따까(불러일으킨 생각)/위짜라 + 쌈빠자나의 수련을 통해 선업을 유지, 증장하고 불선업을 폐기 억제하는 수련을 말합니다.
이러한 수행을 잘 거쳐서 나가는 행에 대한 수련은 자연스럽게 (2~5)번 행에 관한 수련이 됩니다.
8) 정정 : 바른 선정 - 1~7번의 수행을 잘 한 끝에 얻어지는 마음의 고요함과 기쁨을 말합니다. 불교에서는 단계적으로 초선 ~ 4선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대승불교 비판(팔정도, 명명, 윤회전생의 측면에서)]
다만 여기서 주의해야 하는 것은, 대승불교에서 주장하는 팔정도는 상당히 왜곡된 부분이 많습니다.
http://www.hyunbu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96221
일단 위 링크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일단 팔정도의 최종적인 핵심목표인 [카르마 수행을 통해 고통과 윤회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는 최종목표에 대해 법이라는 단어 등으로 뭉뚱그려 표현했습니다. 정정에 대해서도 왜곡된 삼매의 경지 같은 것으로 표현하고 있지요.
아울러 깨달음이 길이니 길이 깨달음이니 하는 말이라거나, 지극히 개인적인 수행인 팔정도가 중생들의 모임인 국가나 사회에 적용될 수 있다고 하는 것 자체가 큰 넌센스이기에 왜곡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애초에 중생들의 집단에 카르마의 억제 수행이 가능할 리가 없는 거거든요.
또한 팔정도 수행 순서 또한 (정견 + 정념) -> 계가 되어야 하나, 대승불교에서는 이와 반대로 도덕적인 생활과 행동을 통해 정념을 닦는다는 인과관계순서가 거꾸로 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사실 일반적인 중생들의 도덕생활관과 크게 다르지 않고, 불선업을 억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중생을 구원한다는 명목 하에 자신들의 종교 체제에 대해 대승(큰 수레바퀴)라고 부르고 다른 불교를 소승이라고 멋대로 명명했는데, 이러한 것 자체가 우열에 대한 집착이며 석가모니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또한 중생을 구원하기 위해 부처가 되지 않고 육도윤회를 계속 돌겠다는 것 또한 법과 다른 오온에 대한 집착으로서 크나큰 불선업에 속합니다. 그 결과 계속해서 지상에 중으로 태어나게 되겠지요.
찾아보니 이미 현실에도 달라이 라마나 젭춘담바 후툭투 같은 케이스들이 있더군요.
이들은 중생과 자신들의 백성을 구원한단 명목 하에 수백년간 계속해서 세상으로 윤회전생을 거치고 있는데요. 결국 법과 구원에 대한 집착(어쩌면 왕이자 스승으로서 누리는 부귀영화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해 아라한이 못 되고 계속해서 중으로 무한전생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수백년간의 수행을 통해 일정수준 과를 성취하고 선업을 많이 짓기야 했겠지만은...
그래도 결국 법과 선행, 구원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해 아라한이 되기는 글렀고, 세세토록 세상을 중으로 떠돌게 된 셈입니다.
대승불교의 주장대로라면 이게 종착역이구요.
대승불교의 수련방식인 간화선... 이것도 문제가 많은게 이러한 말놀음식 수련은 개인의 부정적인 업식을 제거하는 데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점이 있습니다. 그런 초상적이고 배배꼬인 질문에 답변할 수 있다 한들 잡지혜...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말놀이 스킬만 느는 셈이고 개인의 부정적 카르마는 여전하니 해탈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시간낭비인 셈이거든요.
일단 위 링크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일단 팔정도의 최종적인 핵심목표인 [카르마 수행을 통해 고통과 윤회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는 최종목표에 대해 법이라는 단어 등으로 뭉뚱그려 표현했습니다. 정정에 대해서도 왜곡된 삼매의 경지 같은 것으로 표현하고 있지요.
아울러 깨달음이 길이니 길이 깨달음이니 하는 말이라거나, 지극히 개인적인 수행인 팔정도가 중생들의 모임인 국가나 사회에 적용될 수 있다고 하는 것 자체가 큰 넌센스이기에 왜곡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애초에 중생들의 집단에 카르마의 억제 수행이 가능할 리가 없는 거거든요.
또한 팔정도 수행 순서 또한 (정견 + 정념) -> 계가 되어야 하나, 대승불교에서는 이와 반대로 도덕적인 생활과 행동을 통해 정념을 닦는다는 인과관계순서가 거꾸로 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사실 일반적인 중생들의 도덕생활관과 크게 다르지 않고, 불선업을 억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중생을 구원한다는 명목 하에 자신들의 종교 체제에 대해 대승(큰 수레바퀴)라고 부르고 다른 불교를 소승이라고 멋대로 명명했는데, 이러한 것 자체가 우열에 대한 집착이며 석가모니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또한 중생을 구원하기 위해 부처가 되지 않고 육도윤회를 계속 돌겠다는 것 또한 법과 다른 오온에 대한 집착으로서 크나큰 불선업에 속합니다. 그 결과 계속해서 지상에 중으로 태어나게 되겠지요.
찾아보니 이미 현실에도 달라이 라마나 젭춘담바 후툭투 같은 케이스들이 있더군요.
이들은 중생과 자신들의 백성을 구원한단 명목 하에 수백년간 계속해서 세상으로 윤회전생을 거치고 있는데요. 결국 법과 구원에 대한 집착(어쩌면 왕이자 스승으로서 누리는 부귀영화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해 아라한이 못 되고 계속해서 중으로 무한전생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수백년간의 수행을 통해 일정수준 과를 성취하고 선업을 많이 짓기야 했겠지만은...
그래도 결국 법과 선행, 구원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해 아라한이 되기는 글렀고, 세세토록 세상을 중으로 떠돌게 된 셈입니다.
대승불교의 주장대로라면 이게 종착역이구요.
대승불교의 수련방식인 간화선... 이것도 문제가 많은게 이러한 말놀음식 수련은 개인의 부정적인 업식을 제거하는 데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점이 있습니다. 그런 초상적이고 배배꼬인 질문에 답변할 수 있다 한들 잡지혜...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말놀이 스킬만 느는 셈이고 개인의 부정적 카르마는 여전하니 해탈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시간낭비인 셈이거든요.
[부처와 아라한]
후대에 들어 부처가 아라한보다 더한 경지라거나, 관세음보살같은 힌두 신들이 부처로 둔갑하는 일이 벌어졌는데요(대승불교) 이에 대해서 명확히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수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최대한의 경지는 아라한으로서, 근본적인 10가지 번뇌의 족쇄를 극복한 자를 의미하며 고통과 윤회전생을 유발하는 불선업으로부터 자유로운 경지를 이야기합니다. 부처와 아라한의 수준이 별개인 것이 아니라 부처의 경지 또한 아라한에 속합니다. 다만 다른 아라한과 달리 석가모니는 부처라고 따로 지칭되고 있는데, 현재 인간에게 알려진 역사와 세계 안에서는 최초로 연기법을 발견하고 윤회종결의 방법론을 정비한 사람이라는 의미인 것이지요.
따라서 다른 존재가 아라한을 성취하더라도 그 사람은 그냥 아라한이지 부처가 될 수는 없습니다. 애초에 그 정도 수준에 오른 사람이라면 부처라고 불리건 말건 신경도 안 쓰겠지만요.
지금의 문명시대가 끝나고 연기법과 윤회종식에 대한 기술이 완전히 소멸되었을 때, 누군가의 도움 없이 해당 길을 발견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그 문명과 그 인세에서는 부처라고 불릴 것입니다.
관세음보살같은 건 그냥 신화일 뿐이구요.
[10가지 번뇌]
오하분결(욕계에 속하게 하는 족쇄)
①유신견은 고정불변하는 자아 혹은 실체가 있다고 집착하거나 5온 등을 자아라고 생각하는 견해
②의심은 붓다의 핵심적 가르침인 연기법이나 계율에 대해 의심하는 것.
(불법승 삼보에 대해서도 나오나 이는 다분히 후대의 첨삭으로 생각됩니다.)
③계금취견은 형식적 계율이나 의례의식 등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것을 말하며, 이를 통해 해탈(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믿는 것
④감각적 욕망은 눈․귀․코․혀․몸 등의 5가지 감관 등을 통한 감각적 쾌락에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
⑤악의는 성냄과 동의어로 증오, 분노, 적대감 등을 말한다.
오상분결(색계나 무색계에 속하게 하는 족쇄)
⑥색계에 대한 탐욕은 초선부터 4선까지 색계 4선의 수행경지에 대한 집착을 말한다.
⑦무색계에 대한 탐욕은 공무변처에서 비상비비상처까지 4무색정의 경지에 대한 집착을 말한다.
⑧자만은 내가 남보다 우월하거나 뛰어나다는 등의 마음을 말한다.
⑨들뜸은 들뜬 상태나 안정되지 못한 불안한 마음을 말한다.
⑩무명은 12연기의 무명(무지)과 동일한 것으로 4성제나 4제 연기를 모르는 것을 말한다.
위의 10가지 번뇌를 모두 극복한 자를 아라한이라고 하며(수련의 최종 목표), 불교에서 성자의 경지는 수다원 - 사다함 - 아나함 - 아라한이 있다고 보더군요.
수다원 - 꺠달음의 입문에 든 사람으로 앞의 3가지에서 벗어난 사람, 7번 환생하면 아라한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거찬 욕망과 악의가 나지 않아 큰 악행을 행하지 않고 괴로움이 대부분 소실된 존재라 언젠가는 아라한이 되는 존재.
사다함 - 앞의 3가지에 대해 완전히 벗어나고 4-5번의 항목도 매우 약해진 성자, 더이상 업보가 쌓이지 않으며 지난생의 업보를 청산하기 위해 한번 더 천상이나 인간계(욕계)에 태어나고 그 생에서 수련해 아라한이 된다.
아나함 1-5번 항목에서 완전히 벗어나 다시는 이 세상(욕계)에 나지 않는 존재, 상위세계(정거천)에 환생하여 그 뒤로 열반에 이르는 경지.
아라한 - 10가지에서 모두 벗어나 열반에 도달한 자
참고 링크
http://blog.daum.net/bolee591/16155160
https://blog.naver.com/PostView.nhn?blogId=kansas2&logNo=183361760
[+ 탐진치]
탐욕 - 좋아하는 것에 대한 집착
진에 - 싫어하는 것에 대한 반감, 혐오 불쾌
우치 - '탐욕과 진에에 영향받아' 발생하는 진리에 대한 무지, 무명
수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최대한의 경지는 아라한으로서, 근본적인 10가지 번뇌의 족쇄를 극복한 자를 의미하며 고통과 윤회전생을 유발하는 불선업으로부터 자유로운 경지를 이야기합니다. 부처와 아라한의 수준이 별개인 것이 아니라 부처의 경지 또한 아라한에 속합니다. 다만 다른 아라한과 달리 석가모니는 부처라고 따로 지칭되고 있는데, 현재 인간에게 알려진 역사와 세계 안에서는 최초로 연기법을 발견하고 윤회종결의 방법론을 정비한 사람이라는 의미인 것이지요.
따라서 다른 존재가 아라한을 성취하더라도 그 사람은 그냥 아라한이지 부처가 될 수는 없습니다. 애초에 그 정도 수준에 오른 사람이라면 부처라고 불리건 말건 신경도 안 쓰겠지만요.
지금의 문명시대가 끝나고 연기법과 윤회종식에 대한 기술이 완전히 소멸되었을 때, 누군가의 도움 없이 해당 길을 발견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그 문명과 그 인세에서는 부처라고 불릴 것입니다.
관세음보살같은 건 그냥 신화일 뿐이구요.
[10가지 번뇌]
오하분결(욕계에 속하게 하는 족쇄)
①유신견은 고정불변하는 자아 혹은 실체가 있다고 집착하거나 5온 등을 자아라고 생각하는 견해
②의심은 붓다의 핵심적 가르침인 연기법이나 계율에 대해 의심하는 것.
(불법승 삼보에 대해서도 나오나 이는 다분히 후대의 첨삭으로 생각됩니다.)
③계금취견은 형식적 계율이나 의례의식 등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것을 말하며, 이를 통해 해탈(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믿는 것
④감각적 욕망은 눈․귀․코․혀․몸 등의 5가지 감관 등을 통한 감각적 쾌락에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
⑤악의는 성냄과 동의어로 증오, 분노, 적대감 등을 말한다.
오상분결(색계나 무색계에 속하게 하는 족쇄)
⑦무색계에 대한 탐욕은 공무변처에서 비상비비상처까지 4무색정의 경지에 대한 집착을 말한다.
⑧자만은 내가 남보다 우월하거나 뛰어나다는 등의 마음을 말한다.
⑨들뜸은 들뜬 상태나 안정되지 못한 불안한 마음을 말한다.
⑩무명은 12연기의 무명(무지)과 동일한 것으로 4성제나 4제 연기를 모르는 것을 말한다.
위의 10가지 번뇌를 모두 극복한 자를 아라한이라고 하며(수련의 최종 목표), 불교에서 성자의 경지는 수다원 - 사다함 - 아나함 - 아라한이 있다고 보더군요.
수다원 - 꺠달음의 입문에 든 사람으로 앞의 3가지에서 벗어난 사람, 7번 환생하면 아라한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거찬 욕망과 악의가 나지 않아 큰 악행을 행하지 않고 괴로움이 대부분 소실된 존재라 언젠가는 아라한이 되는 존재.
사다함 - 앞의 3가지에 대해 완전히 벗어나고 4-5번의 항목도 매우 약해진 성자, 더이상 업보가 쌓이지 않으며 지난생의 업보를 청산하기 위해 한번 더 천상이나 인간계(욕계)에 태어나고 그 생에서 수련해 아라한이 된다.
아나함 1-5번 항목에서 완전히 벗어나 다시는 이 세상(욕계)에 나지 않는 존재, 상위세계(정거천)에 환생하여 그 뒤로 열반에 이르는 경지.
아라한 - 10가지에서 모두 벗어나 열반에 도달한 자
참고 링크
http://blog.daum.net/bolee591/16155160
https://blog.naver.com/PostView.nhn?blogId=kansas2&logNo=183361760
[+ 탐진치]
탐욕 - 좋아하는 것에 대한 집착
진에 - 싫어하는 것에 대한 반감, 혐오 불쾌
우치 - '탐욕과 진에에 영향받아' 발생하는 진리에 대한 무지, 무명
[육도윤회와 보시]
초기 경전을 보면 육도윤회(혹은 5도윤회 - 아수라계 제외)가 언급되어 있긴 하지만.
육도윤회의 내용을 보면 다분히 당시의 인도 신화가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서, 석가모니의 핵심 주장보다는 도리어 당시 브라만교(힌두교)의 내용에 더 가까운 것이 보여집니다.
현대 대학 교육을 받아 과학 지식에 기반해서 사고하는 스님들과 학자들의 경우, 사후세계설을 부정하고 육도윤회의 의미를 인간 심리상태의 변화에 대한 비유라고 보기도 하더군요. 그러나 당시에는 심리학이라는 개념이 확립되지 않았었고, 당시의 경전에선 사후세계의 개념에 좀 더 무게를 둔 듯한 서술이 여럿 있기에 꼭 그렇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다만 당시 인도에서 널리 퍼져있던 사후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수행을 독려하고, 심리상태를 묘사하기 위해 사용했을 가능성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이 초기경전들은 석가모니가 서술한 것이 아니고, 제자들이나 구전을 정리하던 자가 2차적으로 정리한 자료입니다. 따라서 포교 등의 목적을 위해 당시 신화나 관념에 의해 다분히 오염되었을 가능성이 클 것이라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보시의 경우에도 상당히 왜곡이 되었는데요.
현대의 재가자들은 위에서 언급된 수련을 거의 하고 있지 않고, 절간에 돈만 바치면 보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에 사실상 불선업의 제거에 아무런 도움도 안 됩니다.
그 결과는 뭐 보시를 하나 안하나 비슷하겠지요....
원래는 재가 생활을 하면서도 힘닿는 대로 수련을 행하고 그 행으로서 하는 게 보시입니다. 그러나 후대의 중들이 자신들이 돈을 벌기 위해 절에 보시(돈바침)하면 복락이 무한해서 수련하지 않아도, 그런 의도가 없었어도 작은 보시로도 극락 혹은 천상에 환생한다고 주장하니, 이런 거짓말이 세상에 없을 지경입니다.
[무상 고 무아]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무상 - 고 - 무아’에 대해 자주 설명했다. 초기불전 곳곳에 보인다. 〈쌍윳따니까야〉(22:49)에 나오는 소냐와의 대화는 유명하다. 한때 부처님이 라자가하의 죽림정사에 있었다. 그 때 장자의 아들 소냐가 부처님께 참문(參問)하러 왔다. 찾아온 소냐에게 부처님이 말했다. “소냐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질은 영원한가 무상한가?” “부처님이시여, 무상합니다.”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운 것인가 즐거운 것인가?” “부처님이시여, 괴로운 것입니다.” “무상하고 괴롭고 변화하는 법을 ‘이것은 내 것이고 이것이야말로 나이며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하는 것은 옳은 것인가?” “부처님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만물은 무상하고(영속적이지 못하고) 괴로움이니, 여기서 고정불변의 '나', 고정불변의 실체는 찾을 수 없다는 것. 세상의 만물은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의미.
PS. 전체 내용에 대한 참고 자료
: https://nswsam.wordpress.com/2017/06/11/%ec%b6%9c%ea%b0%80-%ec%a0%84-%eb%a7%88%ec%a7%80%eb%a7%89-%ec%a7%80%ec%9d%b8%ea%b3%bc%ec%9d%98-%ec%88%98%ed%96%89%eb%8b%b9%eb%b6%80-%eb%ac%b8%ec%9e%90%eb%82%b4%ec%97%ad-%ea%b0%88%eb%ac%b4%eb%a6%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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