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의 내용은 서양이 동양보다 우월한 이유.f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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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음악
요즘 국악 듣는 사람들 잘 없다. 대부분 서양의 화성학을 일부 차용한 팝 음악을 듣지.
아니면 서양 클래식을 듣거나. 이 부분은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거다.
그런데 이걸 토대로 "우월한 문화가 열등한 문화를 몰아내고 시장을 차지하는 건 당연"이라고 주장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반발한다. 우월한게 아니라 단지 취향 차이일 뿐이라고 말이지.
"우월하니까 취향이 그렇게 바뀌는 거 아니냐?"고 물으면 뭐라 대답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다. 우리가 한국인이니까 저런 주장을 용납할 수 없는 거지.
즉 서양음악은 우월하지 않다는 주장의 근거는 기분 나쁘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되는 것이다.
나는 여기에 역반발심을 가지기에 한번 조사를 해보았다.
어느날 대장간 옆을 지나가던 피타고라스는 들려오는 망치 소리가 각기 다른 음을 내면서도
서로 조화롭게 울린다는 것을 감지하고 그 여러 망치들의 무게를 달아 보니 1:2비율로 된 두 망치는 옥타브 음정을 울렸고,
2:3 의 비율로 된 두 망치는 완전 5도 그리고 3:4로 된 두 망치 는 완전4도의 음정을 낸다는 점을 깨달았다)
서양의 악기가 동양의 악기보다 더 깊고 부드럽고 공명감 있는 소리를 낸다는 건 다들 알거다.
반면 동양의 악기는 이슬람이든 동아시아든 다들 째지는 소리를 내지.
뭐 이런 소리에 대한 취향은 말 그대로 취향이니 주관적인 것이고 따라서 우열을 가릴 수 없다고 해버리면 그만이다.
또 이런 상대성 타령이야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반론이기도 하고.
하지만 작곡이라는 학문적 영역에 들어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니들 동아시아 전통음악 중에 반주랑 메인멜로디랑 따로 노는 음악 들어본 적 있음?
없을 것임.
동아시아의 음악들은 모조리 모노폴리 즉 단성음악들임.
이 단성음악은 쉽게 말해 멜로디가 하나뿐인 음악을 뜻함.
우리가 알고 있는 반주라는 개념이 없는 음악인 것임.
종묘제례 다들 알 것임. 수많은 전통 악기들이 나옴.
근데 그 음악을 들어보면 뭔가 웅장한 느낌이 안남.
그냥 여러 악기 소리가 뒤섞여서 시끄러운 소리가 남.
나중에 바흐를 거쳐 여러 시대를 거치면서 드디어 화성음악을 만들어냄. 이건 호모포니라고 하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주멜로디+보조멜로디 형식의 음악임.
음악 같은 예술적 영역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취향의 영역일 거 같지만 실제론 아닌 거지.
이처럼 음악만 봐도 서양이 분석적이었던데 반해 동양은 평면적이었던 거지.
단성음악은 아프리카 원시인들도 부르고 과거 고인돌 시대 때도 불렀을 그런 원시 음악이다.
한마디로 목소리 나오는 인간은 누구나 부르는 그런 단순해 빠진 싱글 멜로디의 음악이지.
그걸 조선시대까지 우리 조상들은 발전 못 시켜서 수많은 악기 동원해서 소음만 만들어낸거고.
(사실 우리 조상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중일 3국이 다 그렇다)
이게 나만의 개1소리일 거 같지?
하지만 홍난파도 이걸로 조선음악을 가지고 원시음악이라고 했다. 화음이 없다는 이유로 말이지.
홍난파는 국악을 정식으로 배웠고 나중에 서양음악을 배운 사람임.
(여기서 홍난파 친일드립을 칠 이유는 없다. 친일하려고 서양음악을 찬양할 이유는 없으니까.
단성음악은 조선뿐만 아니라 동양 음악의 공통점이니까. 즉 일본도 예외가 아니니까)
또 오늘날 국악하는 사람들 중에 단성으로 작곡해서 음반내는 사람은 없다.
전부 화성으로 작곡해서 음반내지.
단성만의 고유한 매력이 있어서 화성을 안 했을 거 같으면 이런 현상은 설명이 안 된다.
그 고유하다는 매력을 살려서 단성으로 음반을 내야 정상이지.
정리하면 국악은 클래식과 대등한데 우리 취향이 서구식에 길들여져서 인기가 없는 거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실은 그게 아니라 열등하다는 거.
국악뿐만 아니라 일악 중악 등등 동양 음악은 다 그렇다는 거.
2. 문자
한글은 위대한 우리의 문화유산이자 세계에 자랑할만한 업적이고 세계 언어학자들도 극찬하는데 뭔 개1소리냐?
라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한글은 역설적으로 동아시아의 열등함을 드러내는 문자라는 걸 알 필요가 있다.
문자는 다음과 같이 나누어진다.
1. 이집트 문자처럼 형태 그대로를 그린 상형문자
2. 이 상형문자가 간략화된 표의문자. 한자가 대표적.
3. 일본의 가나처럼 모음과 자음이 구별 안 되는 음절문자.
4. 우리의 한글처럼 모음과 자음을 구분하는 음소문자.
이 음소문자는 문자의 최종 진화형이다. 한글의 우수성으로 거론되는 특징 중 하나지.
그리고 이 한글에 대해 우리는 너무나도 자랑스러워 한다.
제러드 다이아몬드 같은 사람이 극찬했다는 일부 서양인의 발언도 곁들여서.
근데 정작 서구 언어학자들의 논문을 보면 우리가 기대했던 것만큼의 극찬이나 놀라움 같은 건 나오지 않는다.
단지 동양에서도 알파벳을 만들었다니 신기한데, 특이한데... 정도로만 본다.
이유는?
이미 서양에서는 수천년전에 음소문자를 만들었기 때문.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니들이 잘 알고 있는 알파벳이고.
그러니 극찬을 기대하고 서양인들 논문을 읽어보면 정작 우리가 바란 극찬은 별로 없는 걸 알게 된다.
그냥 "동아시아에도 음소문자가 있었네? 오호.." 정도.
그리고 더 들어가면 한글 창제를 서양 알파벳의 영향을 받은 먼 후손 쯤으로 여기고 있음을 알게 된다.
세종이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중국 음운학의 영향을 받아 창제했으며
이 중국의 음운학은 소그드 문자나 위구르 문자 같은 서양 알파벳의 영향을 받은 중앙아시아 문자의 유입을 통해 생성된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지.
즉 정리하면 서양 알파벳에 대한 지식이
중동 -> 몽골 -> 중국
을 거쳐 조선에 유입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세종이 한글을 창제했다고 하는 것임.
좀 더 강하게 나가는 사람은 그냥 몽고의 파스파 문자를 베낀 것이 한글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이 몽골 문자의 조상격이 소그드 문자다.)
뭐 어느 경우이든 한글의 존재는 반대로 동아시아 문자가 서양에 비해 열등했다는 증거가 된다.
서양학자들 주장대로 서양의 음운학의 영향을 받은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설령 그게 아니라 세종이 독자적으로 만든 거라 하더라도 서양보다 수천년이 늦었으니 결국 열등한게 된다.
우리가 한글의 우수성이라면서 칭송하는 특징은 동아시아내에서는 통용될지 모르나
반대로 서양과 비교하는 순간 동양의 열등성을 드러내는 양날의 검이 된다는 거지.
서양이 수천년전 특유의 분석력으로 소리를 모음과 자음이라는 음소레벨까지 분리해낸데 비해
동아시아는 내세울게 없기 때문이지.
한자? 미학적인 부분에선 볼만하다.
하지만 문자의 기본 목적이 미술이 아닌 이상 쪽팔리지.
3. 철학
당장 그리스 철학이랑 맞짱 뜰만한 동아시아 철학을 말해봐라. 니들이 철학을 몰라도 뭔가 후달린다는 생각이 들 거다.
공자 맹자를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에게 갖다대기엔 니들이 봐도 뭔가 좀 후달린다는 느낌이 들거란 말이지.
이유가 뭔지 아냐? 공자 맹자 같은 동아시아 철학자들은 관계론 밖에 몰랐다.
사람과 사람 사이, 물건과 물건 사이, 사람과 물건 사이의 관계만 관심을 가졌단 거지.
그래서 철학을 봐도 도덕 규범이 주를 이룬다. 착하게 살아라 그 얘기밖에 없단 거지.
반면 서양 철학자들은 존재론이 주를 이룬다. 항상 그것의 본질은 무엇인가가 관심의 주를 이루지.
때문에 우리가 보기에 서양 철학은 항상 까다롭게 파고 들고 골치가 아픈거다.
대표적인 예를 들어볼까? 그리스의 4원소설과 중국의 오행설.
전자는 물질이 4개의 원소로 구성되어 있다는 거다. 물, 숨, 붉, 흙이라는 4개의 원소가 섞여서 그 배합 비율에 따라
각기 다른 물질이 된다는 거지. 정확도가 떨어져서 그렇지 오늘날 화학과 같은 논리다.
주기율표 보면 원소 103개가 있는데 이거보다 정확도가 떨어져서 그렇지 아무튼 논리 자체는 같단 거지.
반면 오행설의 경우 나무 쇠 흙 물 불 이렇게 되는데
이게 물질의 구성요소가 아니라 그냥 성질의 근원이다. 뭔 말이냐 하면
나무에는 봄과 동쪽이 나무의 성질에 속하는데 이게 봄과 동쪽이 나무로 만들어진다는 말이 아니라
봄이 되면 초목이 자라고 동풍이 불어오니까 봄과 동쪽은 나무의 속성을 지닌다 이런 게 된다.
즉 눈에 보이는대로 관계만 설정하는 거지.
근데 이 눈에 보인다는 건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 중국이나 한반도에선 동풍이 불지만
유럽에선 서풍이 불거든. 한마디로 중국인의 철학은 눈에 보이는대로 관계만 설정했지 분석이 안 돼 있는 거다.
근데 서양의 경우 눈에 보이는 걸 절대로 그대로 믿지 않았다. 논리를 매우 중시했지.
그 대표적인 예가 제논의 역설이다. 아킬레스가 아무리 빨리 달려도 거북이를 추월 못한다는 얘기 말이다.
이게 사실이 아니라는 건 누구나 안다. 하지만 논리상 박살을 못내니까 계속 고수를 했던 거지.
이처럼 논리 검증을 중요시 여겼기에 서양에서는 형식 논리학이 발전한 반면 동아시아에서는 형식 논리학이 발전 못했다.
여전히 이성과 감성을 구분하지 못했지. 뭔 말이냐 하면 논리상 흠이 없어도 그게 사람 기분 나쁘게 하면
틀린 것으로 간주했다는 얘기다.
그나마 논리를 좀 따졌다는 묵가 명가조차도 도덕율에 어긋나는 논리는 틀린 것으로 간주했으니 할 말이 없지.
이처럼 동아시아인들은 분석, 논리에서 서양인의 상대가 안 된다. 이 분야는 사실상 서양인의 독무대라고 보면 된다.
동아시아의 철학이라는 것들을 보면 전부다 관계론이다. 관계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다는 거지.
서양철학이 존재론인 것과 너무나도 대비되지. 깊이가 없다. 사실상 철학이라는 말을 붙일 수도 없을 정도로.
그래서 도덕 윤리 같은 규범론 밖에 없다.(그래서 서양철학을 하는 사람들은 동양철학이라는 말은 있을 수 없다고 한다.
동양윤리가 맞다는 거지.)
이 때문에 동양은 응용력이 필요한 기술분야에선 서양과 대등하거나 일부 앞서기도 했다.
상호 관계를 중시여기니까 세상을 보는 폭은 아무래 넓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
하지만 깊이가 없기에 분석력, 논리력이 필요한 과학, 창조분야에선 과거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서양을 앞선적이 없지.
화약 나침반 종이? 이게 동아시아의 과학적 발명이라고?
우선 이걸 3대 발명품으로 지정한 사람은 영국의 철학자 베이컨이다.
근데 베이컨이 말한 화약은 황색화약. 이 황색화약은 화합물이며 그 조성비율이 명확히 밝혀진 상태로 유럽인의 발명품이다.
중국이 발명했다는 화약은 흑색화약으로 혼합물이며 그 비율도 알려진바 없는 그냥 체득의 산물이고.
흑색화약이 황색화약으로 발전했다는 연결고리는 어디에도 찾을 수 없고 이 흑색화약으로 추정되는 기록은
인도에서도 발견된다고 한다.
나침반? 종이? 전부 체득에 의한 경험의 산물이지 과학적 발명이 아님.
이건 마치 수레바퀴를 가지고 공학적 지식이 반영된 과학적 발명이라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개수작임.
수레바퀴가 어떻게 만들어졌겠음?
돌 굴러가는 거 보고 만들었겠음? 아니면 진짜 공학적인 복잡한 설계를 통해 만들었겠음?
화약 나침반 종이도 마찬가지임.
그냥 체득적 발명인 걸 가지고 거기다 과학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덮어씌워서 개수작질을 부리는 것임.
철학에 있어서 동아시아는 서양의 상대가 안 됨. 심지어 중국인들은 인도의 철학에 대해서도 열등감을 가진 흔적이 발견됨.
송대에 성리학이 나와서 이, 기 운운하면서 만물의 근원 운운한 것도 인도철학인 불교한테 시장을 뺏겨서
그걸 벤치마킹한 것임. 물론 거기에도 논리나 분석력은 종범 수준이어서 뜬구름 잡기로 끝나지만.
동아시아 우월론자들은 객관적 근거보다는 감정적 소망을 바탕으로 동아시아 우월론을 주장하고 있다.
1. 인종은 평등하다. 그런데 백인 문명이 계속 우월했다는 걸 인정하면 평등하지 않다는 근거가 된다.
2. 우리는 동양인이다. 그런데 백인이 우월하다는 건 기분 나쁘다. 우리가 우월하다.
3. 사람도 잘 나갈 때와 못 나갈 때가 있듯이 지금의 서세동점도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다.
위와 같은 이유로 과거에는 동양이 우월했다는 결론을 미리 내려놓고 그 근거를 찾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과학이 아닌 기술을 가지고 과학인냥 과대 포장을 하거나 별 의미가 없는 것에 억지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몇가지 질문을 해보겠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에 비견될만한 고대 중국의 철학은?
고대 그리스의 기하학에 비견될만한 고대 중국의 기하학은?
고대 그리스의 수학에 비견될만한 고대 중국의 수학은?
고대 그리스의 과학에 비견될만한 고대 중국의 과학은?
르네상스 미술에 비견될만한 중국의 미술은?
정답은 '없음'일 것이다.(구장산술이니 주비산경이니 해서 고대 중국의 수학이 우수했음을 주장하는 견해도 있으나, 모두가 하나같이 증명과정이 결여되어 있기에 오늘날 그 수학성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리스철학의 전통이 사라졌던 중세 암흑기를 제외하고 동양이 서양보다 우월했던 적이 있을까? 중국이 발명했다는 것들도 사실상 '발견'이거나 '기술'일뿐, 과학이 아닌 것들이다.
애초에 동아시아 문명에 과학은 없었다. 기술만 있었을 뿐.
동아시아인들은 실생활에 필요하지 않은 것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래서 서양보다 앞선 '기술'을 보유하거나 앞선 '발견'을 하기도 했지만 이를 크게 발전시키지는 못했다. 원리를 모르니 발전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동아시아인의 사고는 그것이 얼마나 현실에 쓸모있는가에 집중되어 있었을뿐 그것이 왜,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는지는 관심이 없었다. 이러한 비과학적 사고로 인해 동아시아 문명은 정체되었다.
인간의 사고방식은 곧 철학이다.
이 철학은 컴퓨터로 따지면 OS, 즉 운영체제다. 운영체제에 따라 컴퓨터의 활용이 달라지듯이 동양철학은 서양철학에 비해 저열하기 때문에 동양은 서양을 이길 수가 없다.
서 양은 도덕과 진실, 즉 감성과 이성을 구별하여 철학이 발전해왔다. 감성은 신에 대한 원죄를 통해 끝없는 도덕적 반성을 요구하는 기독교, 이성은 지식 그 자체에 대한 끝없는 탐구와 검증을 강조하는 그리스 철학. 이렇게 쌍두마차가 균형적으로 발전하면서 서양은 도덕성과 과학성을 동시에 갖출 수 있었다.
하지만 동양은 감성과 이성을 구분하지 못했다. 그래서 도덕성에 어긋나는 진실은 진실이 아닌 거짓으로 간주해버리는 오류를 당연시하게 되었다.
동아시아 철학은 대부분 전국시대 중국의 제자백가사상들이다. 대표적으로 유가 묵가 명가 법가 병가 등이 있었는데, 이들은 지금도 동아시아인의 사고방식을 지배하고 있다..
1. 유가 - 합리주의적 사상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때의 합리주의는 유교적 합리주의로서 도덕율에 합치하는 이성만 합리적인 것으로 인정하여 불쾌한 진실은 받아들이지 않는 비논리적 한계성을 지니고 있다.
또한 유교합리주의는 생활의 경험 즉 자기가 실생활에서 보고 느끼는 그대로에 합치하느냐만 따지는 것으로 논리성, 과학성, 근원성과는 거리가 먼 합리다.
가 령 유교합리주의 입장에서는 자기가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는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지극히 비합리적인 생각이다. 우리가 이렇게 서 있는 땅은 평평하고 또 기울어지지도 않았는데 어찌 둥글단 말인가. 우리의 일상 경험에 비추어볼 때 말이 안 되는 비합리인 것이다. 또 지구의 자전설도 지극히 비합리적인 주장이다. 지구가 돌면 우리가 어찌 거기에 발 붙이고 살겠는가?
이처럼 유교의 합리기준은 현실의 경험에 있었다. 다시 말해 너무나 현실성, 실용성에만 치우쳐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유교합리주의에 빠진 대다수의 동아시아인들은 실생활에 쓸모없는 지식이나 기술은 틀린 것으로, 쓰잘데 없는 것으로 여기는 성향이 강하다. 그래서 요즘도 서양에서 뭔가 이상한 연구를 했다는 소식이 나오면 도대체 저런 쓸데없는 짓을 왜 하냐며 폄하하기 바쁘다.
대신 유교적 합리주의에 따라 실용성에는 민감하게 반응하여 이를 개발의 동기로 삼는 기술에 있어서는 서양을 앞서기도 한다. 그러나 현대 기술의 근간이 되는 과학이라는 근원적 영역에서는 너무나 취약하여 패배하고 있다.
이 처럼 유교는 그 실용적인 성격으로 인해 속물적인 욕구마저 합리화시키는 실수를 범했다. 그래서 학문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도 진리 그 자체를 중히 여겨 이를 탐구한 고대 그리스 철학과는 달리 유교에서의 학문의 목적은 성인이 되어 입신양명하여 효도하는 것이다. 오늘날 동아시아의 학교 공부에 대한 자세와 그대로 일치하는 것이다.
2. 묵가, 명가 - 묵가는 기독교적 윤리관에 가까운 학파다. 그리고 묵가와 명가는 동아시아 철학으로서는 논리학적 특징이 매우 강하게 나타난 학파로 유가의 유교 합리주의와는 다르게 지식 그 자체를 중시하기도 하였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이 둘은 매우 서양에 가까운 학문이었다.
하지만 역시 도덕과 진실을 구별하지 못하여 도덕에 어긋나는 지식은 거짓으로 간주하는 실수를 범해 결국 형식논리학으로의 진전은 이루지 못했다.
3. 법가 - 인간의 인성 같은 걸 배제하고 법치에 의해 시스템만으로 사회를 돌리려 했던 체제다.(물론 꼭 성향을 들자면 성악설에 가깝기는 하나, 애초에 인성이 어떻든 그것의 변수로서의 성격을 무시하고 시스템 자체로 결과를 고정시키는 걸 추구했다고 볼 수 있다)
철학이라기 보다는 정치학이나 행정학에 가까운 학파로 덕분에 동아시아의 정치체제는 서양과 비교했을 때 중앙집권이나 관료제적 측면에서 대등한 수준을 보여준다.(반면 민주정이나 공화정과 같은 체제는 등장한 적이 없다) 그러나 지식에 대한 태도는 진리 그 자체의 탐구가 아닌 경세제민의 수단일 뿐이었다. 이 점에서 한계.
4. 도가 - 어떤 논쟁이나 탐구도 때려치고 집착하지 말고 살라는 사상. 비슷한 것으로 원효의 화쟁사상이 있겠다. 의문이나 탐구심이 생기면 논쟁을 하게 되고 거기에 집착하게 되어 괴로우니 그냥 집착 자체를 하지 말고 싸우지도 말라는 것.
끝없는 검증과 연구를 거듭하는 과학과는 상극관계에 있는 사상으로서 돈 많은 갑부들이 시골에 쳐박혀 남은 여생을 살 때나 좋은 사상이다.
5. 병가 - 손자병법으로 대표되는 학파. 기본적으로 승리하는 인생, 승리하는 국가를 목표로 한다. 인생과 역사를 전략적으로 접근하기에 좋은 사상.
대표적으로 일본이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크게 발전시키고 국민사상에 내재화한 대표적인 예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는 명언을 바탕으로 제2차대전까지 일본의 승승장구는 병법가에 의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역시 법가와 마찬가지로 지식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삼으므로써 근본적인 한계를 내포한 사상이었다. 기술을 아무리 발전시켜도 과학력이 뒤받침되지 않으면 결국 한계에 봉착하는 것과 같은 이치.
그래서 일본은 지금도 서양이 과학을 통해 지식을 발표하면 이를 토대로 기술을 개발하여 창의력이 없는 모방의 동물이라는 악평을 듣기도 한다. 이건 한중일 삼국이 마찬가지.
요즘도 한중일 삼국의 언론을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수학 과학 올림피아드에서 동아시아 학생은 1위를 하는데 왜 노벨상은 제대로 못 타나?"
"동아시아 교육은 지식의 암기뿐 원리나 근본 원인은 가르치지도 않고 관심도 없다"
모두 철학이라는 OS의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특히 유교합리주의와 유교의 학문관이 다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시 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 유교합리주의적 사고에선 가장 합리적인 것이고, 출세하여 입신양명하고 효도하는 것이 유교의 학문관에선 가장 이상적인 태도인 것이다. 그러니 서양처럼 시험에 안 나오는 것에 빠져 공부를 하거나 원리 위주로 공부할 일은 절대로 없다.
그러니 중국이 엄청나게 발전하여 기술로 서양을 이겨서 돈을 더 많이 벌지는 몰라도 과학이라는 이 세상 만물의 근본지식에 대한 우위는 절대로 확보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서양에서 세상을 바꿀 과학지식이 발견되고 발표되면 이를 부랴부랴 수입해서 응용, 돈 벌어먹는 수준에 그칠 것이란 말이다.
즉 돈은 더 많을지 몰라도, 서양의 문명적 우위는 계속될 것이라는 얘기.
1인당 소득 따위가 문명의 척도라면 중동의 산유국들은 세계 최첨단의 문명을 누리고 있는 것이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컴 퓨터 CPU 성능이 좋고 VGA 성능이 좋아도 운영체제가 도스면 그 컴퓨터의 활용도는 제한될 수밖에 없듯이, 동아시아의 운영체제인 제자백가의 사상이 고대 그리스철학에 비해 그 성능이 너무나 떨어지는 이상 동아시아인은 절대로 서양을 이길 수가 없다.
그럼 "이 OS를 그냥 교체하면 되지 않느냐?"라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이런 OS는 물건이나 학문 수입하듯이 쉽게 들여와서 바꿀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는 방식으로서의 가치관과 사고방식은 그 사회의 문화와 교류, 경험을 통해 자리잡는 것이지 소프트웨어 설치하듯이 포맷하고 새로 깔 수 있는 게 아니다. 아예 백인에게 입양되어 그곳에서 자라났다면 모를까.
물 론 유교합리주의에서 보이는 속물근성은 어느 문명에서나 보이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문제는 동아시아의 경우 그 속물근성을 유교철학으로 아예 합리화, 도덕화를 시켜놨다는 거다. 이런 속물근성이 합리화, 도덕화되어 우리 마음에 정착된 이상 이런 합리적인 운영체제를 바꿀 필요를 느낄 일이 없다는 거다.
이를 입증하는 예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가령 언론에서 주입식 교육을 관두고 원리교육, 토론식교육 같은 걸 하라고 하는데, 그 이유를 보면 지식 그 자체의 깨달음과 이를 통한 즐거움 때문이 아니라, 노벨상 같은 걸 타서 국위선양해야 된다는 걸 들고 있다. 유교적합리주의내에서의 과학적 사고방식의 도입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전통적인 유교합리주의와 마찬가지로 학문과 지식을 수단화하고 있다는 얘기다. 다시 말해 유교합리주의내에서의 과학적 사고의 수용이다.
이러니 안 된다는 거다.
우리 동아시아인은 여전히 현실에서 돈 많이 벌고 출세하는 것에만 생각이 집중되어 있기에 서양인의 사고방식에 진정으로 매력을 느낄 일은 절대로 없을테니까 말이다.
서양인과 동양인의 사고방식의 수준은 이 둘의 외모만큼이나 한쪽은 입체적인데 비해 한쪽은 평면적이라는 것이 결론이다.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서세동점현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4. 수학
동아시아를 비롯한 비서양 국가들의 수학은 전부다 대수학 영역에 치우쳐져 있음.
이 대수학이라는 건 말 그대로를 풀이하면 수를 대신한다는 뜻임. 즉 다시 말해 방정식의 x y 같은 걸 생각하면 되겠음.
왜 대수학 영역이 발달했느냐? 이유는 간단.
장사를 하든 공사를 하든 대수학은 실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음. 그 때문에 대수학 영역은 문명이 있는 이상
발전할 수밖에 없는 영역임. 그리고 서양에도 당연히 대수학 영역이 있음.
그러나 문제는 동양에는 기하학이 없었음. 서양의 유클리드 기하학이 있는 것과는 반대로 기하학이 전무한 것.
이 기하학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우선 대수학 이야기부터 하겠음.
동아시아 수학이 서양에 뒤지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구장산술이니 주비산경이니 같은 이야기를 꺼내는 경우를
보았을 것임. 그리고는 동아시아에도 원주율을 구했다느니 방정식이 있었다느니 마방진이 있었다느니 등의 이야기를
하며 서양수학을 능가한 것처럼 과장하는 글을 많이 보았을 것임.
그런데 이 대수학 영역에서조차 동아시아는 서양를 따라가지 못하는 결정적인 한계가 있음.
바로 "증명"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임.
니들이 중고등학교 수학 시간에 배웠던 그 증명이라는 걸 생각조차 못한 것임.
이 증명이라는 게 왜 중요한가?
증명이라는 것은 수학 원리, 수학 이론의 논리성, 무결점성을 입증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통해 새로운 원리를 발견할 수 있고 기존 논리의 정확성과 무결점성을 높이게 된다.
이 증명이란 과정을 고대 그리스 수학부터해서 서양은 매우 중시 여겼다.
공리와 절대적 진리를 구별했다. 공리라는 것은 사람들이 옳게 여기지만 논리적 증명은 되지 않은 것을 말한다.
동양에서는 그냥 바로 진리로 취급할 그럴 성질의 것이지.
이런 것조차도 정확하게 구별해서 서술하고 증명했다는 얘기다.
동아시아 수학은 이런 증명의 과정이 없다. 그 때문에 대수학 영역에서도 수학이라는 말보다는 산술이라는 명칭이 더
어울리는 그런 수준인 것이다.
가령 원주율 3을 구하는데 있어서 복잡한 수학적 논리나 공식은 필요 없다. 그냥 동그란 원을 그려놓고 그 원의 지름과
둘레의 길이를 비교해보면 누구나 대충 3.xx가 나온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런 경험적 습득 수준에 그쳤기에 산술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기하학의 경우 동아시아에서는 탄생조차 하지 못했다.
그래서 중국이 기하학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그 생으로부터 약 1500년이 지난 뒤인 명나라 시절이었다.
마테오리치가 기하학 원론을 들고 오자 그제서야 처음으로 접하게 된 것이다.
그전까지 기하학이라는게 없었던 중국인으로서는 이해에 매우 어려움을 겪었다.
그리고 그 기하학의 필요성조차 없다고 여겼다. 이걸 어디에 써먹냐고 거들떠도 안 봤단 거지.
그래서 실제로 기하학 원론이 중국에서 완역된 것은 300년이 지난 1800년대이다.
서세동점의 시대로 서양세력이 동양을 쳐바르기 시작한 그 때서야 부랴부랴 번역을 마친 것이다.
애초에 역법(1년을 몇일로 잡느냐)도 동아시아는 자체 역법으로 생활하다가 이슬람 역법을 받아들이고 나중엔
서양의 역법인 그레고리력 즉 오늘날의 양력으로 통일했다. 이유는 간단. 이게 더 정밀해서 농사든 뭐든 더 써먹기 좋거든.
이처럼 수학에서 동아시아는 서양의 상대가 안 된다.
요즘 미국에서 황인이 백인보다 수학 잘한다는 얘기 나오는데 그거 다 대수학 영역 이야기다.
기하학이나 기타 논리가 필요한 분야에선 전혀 그렇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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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경우에는 개인의 성향에 따라 취향 아니냐, 개개인마다 다 다른 것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학적 법칙과 내용은 서양이 동양보다 우월한 이유.f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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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음악
요즘 국악 듣는 사람들 잘 없다. 대부분 서양의 화성학을 일부 차용한 팝 음악을 듣지.
아니면 서양 클래식을 듣거나. 이 부분은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거다.
그런데 이걸 토대로 "우월한 문화가 열등한 문화를 몰아내고 시장을 차지하는 건 당연"이라고 주장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반발한다. 우월한게 아니라 단지 취향 차이일 뿐이라고 말이지.
"우월하니까 취향이 그렇게 바뀌는 거 아니냐?"고 물으면 뭐라 대답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다. 우리가 한국인이니까 저런 주장을 용납할 수 없는 거지.
즉 서양음악은 우월하지 않다는 주장의 근거는 기분 나쁘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되는 것이다.
나는 여기에 역반발심을 가지기에 한번 조사를 해보았다.
어느날 대장간 옆을 지나가던 피타고라스는 들려오는 망치 소리가 각기 다른 음을 내면서도
서로 조화롭게 울린다는 것을 감지하고 그 여러 망치들의 무게를 달아 보니 1:2비율로 된 두 망치는 옥타브 음정을 울렸고,
2:3 의 비율로 된 두 망치는 완전 5도 그리고 3:4로 된 두 망치 는 완전4도의 음정을 낸다는 점을 깨달았다)
서양의 악기가 동양의 악기보다 더 깊고 부드럽고 공명감 있는 소리를 낸다는 건 다들 알거다.
반면 동양의 악기는 이슬람이든 동아시아든 다들 째지는 소리를 내지.
뭐 이런 소리에 대한 취향은 말 그대로 취향이니 주관적인 것이고 따라서 우열을 가릴 수 없다고 해버리면 그만이다.
또 이런 상대성 타령이야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반론이기도 하고.
하지만 작곡이라는 학문적 영역에 들어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니들 동아시아 전통음악 중에 반주랑 메인멜로디랑 따로 노는 음악 들어본 적 있음?
없을 것임.
동아시아의 음악들은 모조리 모노폴리 즉 단성음악들임.
이 단성음악은 쉽게 말해 멜로디가 하나뿐인 음악을 뜻함.
우리가 알고 있는 반주라는 개념이 없는 음악인 것임.
종묘제례 다들 알 것임. 수많은 전통 악기들이 나옴.
근데 그 음악을 들어보면 뭔가 웅장한 느낌이 안남.
그냥 여러 악기 소리가 뒤섞여서 시끄러운 소리가 남.
나중에 바흐를 거쳐 여러 시대를 거치면서 드디어 화성음악을 만들어냄. 이건 호모포니라고 하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주멜로디+보조멜로디 형식의 음악임.
음악 같은 예술적 영역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취향의 영역일 거 같지만 실제론 아닌 거지.
이처럼 음악만 봐도 서양이 분석적이었던데 반해 동양은 평면적이었던 거지.
단성음악은 아프리카 원시인들도 부르고 과거 고인돌 시대 때도 불렀을 그런 원시 음악이다.
한마디로 목소리 나오는 인간은 누구나 부르는 그런 단순해 빠진 싱글 멜로디의 음악이지.
그걸 조선시대까지 우리 조상들은 발전 못 시켜서 수많은 악기 동원해서 소음만 만들어낸거고.
(사실 우리 조상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중일 3국이 다 그렇다)
이게 나만의 개1소리일 거 같지?
하지만 홍난파도 이걸로 조선음악을 가지고 원시음악이라고 했다. 화음이 없다는 이유로 말이지.
홍난파는 국악을 정식으로 배웠고 나중에 서양음악을 배운 사람임.
(여기서 홍난파 친일드립을 칠 이유는 없다. 친일하려고 서양음악을 찬양할 이유는 없으니까.
단성음악은 조선뿐만 아니라 동양 음악의 공통점이니까. 즉 일본도 예외가 아니니까)
또 오늘날 국악하는 사람들 중에 단성으로 작곡해서 음반내는 사람은 없다.
전부 화성으로 작곡해서 음반내지.
단성만의 고유한 매력이 있어서 화성을 안 했을 거 같으면 이런 현상은 설명이 안 된다.
그 고유하다는 매력을 살려서 단성으로 음반을 내야 정상이지.
정리하면 국악은 클래식과 대등한데 우리 취향이 서구식에 길들여져서 인기가 없는 거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실은 그게 아니라 열등하다는 거.
국악뿐만 아니라 일악 중악 등등 동양 음악은 다 그렇다는 거.
2. 문자
한글은 위대한 우리의 문화유산이자 세계에 자랑할만한 업적이고 세계 언어학자들도 극찬하는데 뭔 개1소리냐?
라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한글은 역설적으로 동아시아의 열등함을 드러내는 문자라는 걸 알 필요가 있다.
문자는 다음과 같이 나누어진다.
1. 이집트 문자처럼 형태 그대로를 그린 상형문자
2. 이 상형문자가 간략화된 표의문자. 한자가 대표적.
3. 일본의 가나처럼 모음과 자음이 구별 안 되는 음절문자.
4. 우리의 한글처럼 모음과 자음을 구분하는 음소문자.
이 음소문자는 문자의 최종 진화형이다. 한글의 우수성으로 거론되는 특징 중 하나지.
그리고 이 한글에 대해 우리는 너무나도 자랑스러워 한다.
제러드 다이아몬드 같은 사람이 극찬했다는 일부 서양인의 발언도 곁들여서.
근데 정작 서구 언어학자들의 논문을 보면 우리가 기대했던 것만큼의 극찬이나 놀라움 같은 건 나오지 않는다.
단지 동양에서도 알파벳을 만들었다니 신기한데, 특이한데... 정도로만 본다.
이유는?
이미 서양에서는 수천년전에 음소문자를 만들었기 때문.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니들이 잘 알고 있는 알파벳이고.
그러니 극찬을 기대하고 서양인들 논문을 읽어보면 정작 우리가 바란 극찬은 별로 없는 걸 알게 된다.
그냥 "동아시아에도 음소문자가 있었네? 오호.." 정도.
그리고 더 들어가면 한글 창제를 서양 알파벳의 영향을 받은 먼 후손 쯤으로 여기고 있음을 알게 된다.
세종이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중국 음운학의 영향을 받아 창제했으며
이 중국의 음운학은 소그드 문자나 위구르 문자 같은 서양 알파벳의 영향을 받은 중앙아시아 문자의 유입을 통해 생성된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지.
즉 정리하면 서양 알파벳에 대한 지식이
중동 -> 몽골 -> 중국
을 거쳐 조선에 유입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세종이 한글을 창제했다고 하는 것임.
좀 더 강하게 나가는 사람은 그냥 몽고의 파스파 문자를 베낀 것이 한글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이 몽골 문자의 조상격이 소그드 문자다.)
뭐 어느 경우이든 한글의 존재는 반대로 동아시아 문자가 서양에 비해 열등했다는 증거가 된다.
서양학자들 주장대로 서양의 음운학의 영향을 받은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설령 그게 아니라 세종이 독자적으로 만든 거라 하더라도 서양보다 수천년이 늦었으니 결국 열등한게 된다.
우리가 한글의 우수성이라면서 칭송하는 특징은 동아시아내에서는 통용될지 모르나
반대로 서양과 비교하는 순간 동양의 열등성을 드러내는 양날의 검이 된다는 거지.
서양이 수천년전 특유의 분석력으로 소리를 모음과 자음이라는 음소레벨까지 분리해낸데 비해
동아시아는 내세울게 없기 때문이지.
한자? 미학적인 부분에선 볼만하다.
하지만 문자의 기본 목적이 미술이 아닌 이상 쪽팔리지.
3. 철학
당장 그리스 철학이랑 맞짱 뜰만한 동아시아 철학을 말해봐라. 니들이 철학을 몰라도 뭔가 후달린다는 생각이 들 거다.
공자 맹자를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에게 갖다대기엔 니들이 봐도 뭔가 좀 후달린다는 느낌이 들거란 말이지.
이유가 뭔지 아냐? 공자 맹자 같은 동아시아 철학자들은 관계론 밖에 몰랐다.
사람과 사람 사이, 물건과 물건 사이, 사람과 물건 사이의 관계만 관심을 가졌단 거지.
그래서 철학을 봐도 도덕 규범이 주를 이룬다. 착하게 살아라 그 얘기밖에 없단 거지.
반면 서양 철학자들은 존재론이 주를 이룬다. 항상 그것의 본질은 무엇인가가 관심의 주를 이루지.
때문에 우리가 보기에 서양 철학은 항상 까다롭게 파고 들고 골치가 아픈거다.
대표적인 예를 들어볼까? 그리스의 4원소설과 중국의 오행설.
전자는 물질이 4개의 원소로 구성되어 있다는 거다. 물, 숨, 붉, 흙이라는 4개의 원소가 섞여서 그 배합 비율에 따라
각기 다른 물질이 된다는 거지. 정확도가 떨어져서 그렇지 오늘날 화학과 같은 논리다.
주기율표 보면 원소 103개가 있는데 이거보다 정확도가 떨어져서 그렇지 아무튼 논리 자체는 같단 거지.
반면 오행설의 경우 나무 쇠 흙 물 불 이렇게 되는데
이게 물질의 구성요소가 아니라 그냥 성질의 근원이다. 뭔 말이냐 하면
나무에는 봄과 동쪽이 나무의 성질에 속하는데 이게 봄과 동쪽이 나무로 만들어진다는 말이 아니라
봄이 되면 초목이 자라고 동풍이 불어오니까 봄과 동쪽은 나무의 속성을 지닌다 이런 게 된다.
즉 눈에 보이는대로 관계만 설정하는 거지.
근데 이 눈에 보인다는 건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 중국이나 한반도에선 동풍이 불지만
유럽에선 서풍이 불거든. 한마디로 중국인의 철학은 눈에 보이는대로 관계만 설정했지 분석이 안 돼 있는 거다.
근데 서양의 경우 눈에 보이는 걸 절대로 그대로 믿지 않았다. 논리를 매우 중시했지.
그 대표적인 예가 제논의 역설이다. 아킬레스가 아무리 빨리 달려도 거북이를 추월 못한다는 얘기 말이다.
이게 사실이 아니라는 건 누구나 안다. 하지만 논리상 박살을 못내니까 계속 고수를 했던 거지.
이처럼 논리 검증을 중요시 여겼기에 서양에서는 형식 논리학이 발전한 반면 동아시아에서는 형식 논리학이 발전 못했다.
여전히 이성과 감성을 구분하지 못했지. 뭔 말이냐 하면 논리상 흠이 없어도 그게 사람 기분 나쁘게 하면
틀린 것으로 간주했다는 얘기다.
그나마 논리를 좀 따졌다는 묵가 명가조차도 도덕율에 어긋나는 논리는 틀린 것으로 간주했으니 할 말이 없지.
이처럼 동아시아인들은 분석, 논리에서 서양인의 상대가 안 된다. 이 분야는 사실상 서양인의 독무대라고 보면 된다.
동아시아의 철학이라는 것들을 보면 전부다 관계론이다. 관계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다는 거지.
서양철학이 존재론인 것과 너무나도 대비되지. 깊이가 없다. 사실상 철학이라는 말을 붙일 수도 없을 정도로.
그래서 도덕 윤리 같은 규범론 밖에 없다.(그래서 서양철학을 하는 사람들은 동양철학이라는 말은 있을 수 없다고 한다.
동양윤리가 맞다는 거지.)
이 때문에 동양은 응용력이 필요한 기술분야에선 서양과 대등하거나 일부 앞서기도 했다.
상호 관계를 중시여기니까 세상을 보는 폭은 아무래 넓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
하지만 깊이가 없기에 분석력, 논리력이 필요한 과학, 창조분야에선 과거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서양을 앞선적이 없지.
화약 나침반 종이? 이게 동아시아의 과학적 발명이라고?
우선 이걸 3대 발명품으로 지정한 사람은 영국의 철학자 베이컨이다.
근데 베이컨이 말한 화약은 황색화약. 이 황색화약은 화합물이며 그 조성비율이 명확히 밝혀진 상태로 유럽인의 발명품이다.
중국이 발명했다는 화약은 흑색화약으로 혼합물이며 그 비율도 알려진바 없는 그냥 체득의 산물이고.
흑색화약이 황색화약으로 발전했다는 연결고리는 어디에도 찾을 수 없고 이 흑색화약으로 추정되는 기록은
인도에서도 발견된다고 한다.
나침반? 종이? 전부 체득에 의한 경험의 산물이지 과학적 발명이 아님.
이건 마치 수레바퀴를 가지고 공학적 지식이 반영된 과학적 발명이라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개수작임.
수레바퀴가 어떻게 만들어졌겠음?
돌 굴러가는 거 보고 만들었겠음? 아니면 진짜 공학적인 복잡한 설계를 통해 만들었겠음?
화약 나침반 종이도 마찬가지임.
그냥 체득적 발명인 걸 가지고 거기다 과학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덮어씌워서 개수작질을 부리는 것임.
철학에 있어서 동아시아는 서양의 상대가 안 됨. 심지어 중국인들은 인도의 철학에 대해서도 열등감을 가진 흔적이 발견됨.
송대에 성리학이 나와서 이, 기 운운하면서 만물의 근원 운운한 것도 인도철학인 불교한테 시장을 뺏겨서
그걸 벤치마킹한 것임. 물론 거기에도 논리나 분석력은 종범 수준이어서 뜬구름 잡기로 끝나지만.
동아시아 우월론자들은 객관적 근거보다는 감정적 소망을 바탕으로 동아시아 우월론을 주장하고 있다.
1. 인종은 평등하다. 그런데 백인 문명이 계속 우월했다는 걸 인정하면 평등하지 않다는 근거가 된다.
2. 우리는 동양인이다. 그런데 백인이 우월하다는 건 기분 나쁘다. 우리가 우월하다.
3. 사람도 잘 나갈 때와 못 나갈 때가 있듯이 지금의 서세동점도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다.
위와 같은 이유로 과거에는 동양이 우월했다는 결론을 미리 내려놓고 그 근거를 찾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과학이 아닌 기술을 가지고 과학인냥 과대 포장을 하거나 별 의미가 없는 것에 억지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몇가지 질문을 해보겠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에 비견될만한 고대 중국의 철학은?
고대 그리스의 기하학에 비견될만한 고대 중국의 기하학은?
고대 그리스의 수학에 비견될만한 고대 중국의 수학은?
고대 그리스의 과학에 비견될만한 고대 중국의 과학은?
르네상스 미술에 비견될만한 중국의 미술은?
정답은 '없음'일 것이다.(구장산술이니 주비산경이니 해서 고대 중국의 수학이 우수했음을 주장하는 견해도 있으나, 모두가 하나같이 증명과정이 결여되어 있기에 오늘날 그 수학성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리스철학의 전통이 사라졌던 중세 암흑기를 제외하고 동양이 서양보다 우월했던 적이 있을까? 중국이 발명했다는 것들도 사실상 '발견'이거나 '기술'일뿐, 과학이 아닌 것들이다.
애초에 동아시아 문명에 과학은 없었다. 기술만 있었을 뿐.
동아시아인들은 실생활에 필요하지 않은 것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래서 서양보다 앞선 '기술'을 보유하거나 앞선 '발견'을 하기도 했지만 이를 크게 발전시키지는 못했다. 원리를 모르니 발전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동아시아인의 사고는 그것이 얼마나 현실에 쓸모있는가에 집중되어 있었을뿐 그것이 왜,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는지는 관심이 없었다. 이러한 비과학적 사고로 인해 동아시아 문명은 정체되었다.
인간의 사고방식은 곧 철학이다.
이 철학은 컴퓨터로 따지면 OS, 즉 운영체제다. 운영체제에 따라 컴퓨터의 활용이 달라지듯이 동양철학은 서양철학에 비해 저열하기 때문에 동양은 서양을 이길 수가 없다.
서 양은 도덕과 진실, 즉 감성과 이성을 구별하여 철학이 발전해왔다. 감성은 신에 대한 원죄를 통해 끝없는 도덕적 반성을 요구하는 기독교, 이성은 지식 그 자체에 대한 끝없는 탐구와 검증을 강조하는 그리스 철학. 이렇게 쌍두마차가 균형적으로 발전하면서 서양은 도덕성과 과학성을 동시에 갖출 수 있었다.
하지만 동양은 감성과 이성을 구분하지 못했다. 그래서 도덕성에 어긋나는 진실은 진실이 아닌 거짓으로 간주해버리는 오류를 당연시하게 되었다.
동아시아 철학은 대부분 전국시대 중국의 제자백가사상들이다. 대표적으로 유가 묵가 명가 법가 병가 등이 있었는데, 이들은 지금도 동아시아인의 사고방식을 지배하고 있다..
1. 유가 - 합리주의적 사상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때의 합리주의는 유교적 합리주의로서 도덕율에 합치하는 이성만 합리적인 것으로 인정하여 불쾌한 진실은 받아들이지 않는 비논리적 한계성을 지니고 있다.
또한 유교합리주의는 생활의 경험 즉 자기가 실생활에서 보고 느끼는 그대로에 합치하느냐만 따지는 것으로 논리성, 과학성, 근원성과는 거리가 먼 합리다.
가 령 유교합리주의 입장에서는 자기가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는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지극히 비합리적인 생각이다. 우리가 이렇게 서 있는 땅은 평평하고 또 기울어지지도 않았는데 어찌 둥글단 말인가. 우리의 일상 경험에 비추어볼 때 말이 안 되는 비합리인 것이다. 또 지구의 자전설도 지극히 비합리적인 주장이다. 지구가 돌면 우리가 어찌 거기에 발 붙이고 살겠는가?
이처럼 유교의 합리기준은 현실의 경험에 있었다. 다시 말해 너무나 현실성, 실용성에만 치우쳐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유교합리주의에 빠진 대다수의 동아시아인들은 실생활에 쓸모없는 지식이나 기술은 틀린 것으로, 쓰잘데 없는 것으로 여기는 성향이 강하다. 그래서 요즘도 서양에서 뭔가 이상한 연구를 했다는 소식이 나오면 도대체 저런 쓸데없는 짓을 왜 하냐며 폄하하기 바쁘다.
대신 유교적 합리주의에 따라 실용성에는 민감하게 반응하여 이를 개발의 동기로 삼는 기술에 있어서는 서양을 앞서기도 한다. 그러나 현대 기술의 근간이 되는 과학이라는 근원적 영역에서는 너무나 취약하여 패배하고 있다.
이 처럼 유교는 그 실용적인 성격으로 인해 속물적인 욕구마저 합리화시키는 실수를 범했다. 그래서 학문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도 진리 그 자체를 중히 여겨 이를 탐구한 고대 그리스 철학과는 달리 유교에서의 학문의 목적은 성인이 되어 입신양명하여 효도하는 것이다. 오늘날 동아시아의 학교 공부에 대한 자세와 그대로 일치하는 것이다.
2. 묵가, 명가 - 묵가는 기독교적 윤리관에 가까운 학파다. 그리고 묵가와 명가는 동아시아 철학으로서는 논리학적 특징이 매우 강하게 나타난 학파로 유가의 유교 합리주의와는 다르게 지식 그 자체를 중시하기도 하였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이 둘은 매우 서양에 가까운 학문이었다.
하지만 역시 도덕과 진실을 구별하지 못하여 도덕에 어긋나는 지식은 거짓으로 간주하는 실수를 범해 결국 형식논리학으로의 진전은 이루지 못했다.
3. 법가 - 인간의 인성 같은 걸 배제하고 법치에 의해 시스템만으로 사회를 돌리려 했던 체제다.(물론 꼭 성향을 들자면 성악설에 가깝기는 하나, 애초에 인성이 어떻든 그것의 변수로서의 성격을 무시하고 시스템 자체로 결과를 고정시키는 걸 추구했다고 볼 수 있다)
철학이라기 보다는 정치학이나 행정학에 가까운 학파로 덕분에 동아시아의 정치체제는 서양과 비교했을 때 중앙집권이나 관료제적 측면에서 대등한 수준을 보여준다.(반면 민주정이나 공화정과 같은 체제는 등장한 적이 없다) 그러나 지식에 대한 태도는 진리 그 자체의 탐구가 아닌 경세제민의 수단일 뿐이었다. 이 점에서 한계.
4. 도가 - 어떤 논쟁이나 탐구도 때려치고 집착하지 말고 살라는 사상. 비슷한 것으로 원효의 화쟁사상이 있겠다. 의문이나 탐구심이 생기면 논쟁을 하게 되고 거기에 집착하게 되어 괴로우니 그냥 집착 자체를 하지 말고 싸우지도 말라는 것.
끝없는 검증과 연구를 거듭하는 과학과는 상극관계에 있는 사상으로서 돈 많은 갑부들이 시골에 쳐박혀 남은 여생을 살 때나 좋은 사상이다.
5. 병가 - 손자병법으로 대표되는 학파. 기본적으로 승리하는 인생, 승리하는 국가를 목표로 한다. 인생과 역사를 전략적으로 접근하기에 좋은 사상.
대표적으로 일본이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크게 발전시키고 국민사상에 내재화한 대표적인 예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는 명언을 바탕으로 제2차대전까지 일본의 승승장구는 병법가에 의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역시 법가와 마찬가지로 지식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삼으므로써 근본적인 한계를 내포한 사상이었다. 기술을 아무리 발전시켜도 과학력이 뒤받침되지 않으면 결국 한계에 봉착하는 것과 같은 이치.
그래서 일본은 지금도 서양이 과학을 통해 지식을 발표하면 이를 토대로 기술을 개발하여 창의력이 없는 모방의 동물이라는 악평을 듣기도 한다. 이건 한중일 삼국이 마찬가지.
요즘도 한중일 삼국의 언론을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수학 과학 올림피아드에서 동아시아 학생은 1위를 하는데 왜 노벨상은 제대로 못 타나?"
"동아시아 교육은 지식의 암기뿐 원리나 근본 원인은 가르치지도 않고 관심도 없다"
모두 철학이라는 OS의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특히 유교합리주의와 유교의 학문관이 다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시 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 유교합리주의적 사고에선 가장 합리적인 것이고, 출세하여 입신양명하고 효도하는 것이 유교의 학문관에선 가장 이상적인 태도인 것이다. 그러니 서양처럼 시험에 안 나오는 것에 빠져 공부를 하거나 원리 위주로 공부할 일은 절대로 없다.
그러니 중국이 엄청나게 발전하여 기술로 서양을 이겨서 돈을 더 많이 벌지는 몰라도 과학이라는 이 세상 만물의 근본지식에 대한 우위는 절대로 확보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서양에서 세상을 바꿀 과학지식이 발견되고 발표되면 이를 부랴부랴 수입해서 응용, 돈 벌어먹는 수준에 그칠 것이란 말이다.
즉 돈은 더 많을지 몰라도, 서양의 문명적 우위는 계속될 것이라는 얘기.
1인당 소득 따위가 문명의 척도라면 중동의 산유국들은 세계 최첨단의 문명을 누리고 있는 것이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컴 퓨터 CPU 성능이 좋고 VGA 성능이 좋아도 운영체제가 도스면 그 컴퓨터의 활용도는 제한될 수밖에 없듯이, 동아시아의 운영체제인 제자백가의 사상이 고대 그리스철학에 비해 그 성능이 너무나 떨어지는 이상 동아시아인은 절대로 서양을 이길 수가 없다.
그럼 "이 OS를 그냥 교체하면 되지 않느냐?"라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이런 OS는 물건이나 학문 수입하듯이 쉽게 들여와서 바꿀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는 방식으로서의 가치관과 사고방식은 그 사회의 문화와 교류, 경험을 통해 자리잡는 것이지 소프트웨어 설치하듯이 포맷하고 새로 깔 수 있는 게 아니다. 아예 백인에게 입양되어 그곳에서 자라났다면 모를까.
물 론 유교합리주의에서 보이는 속물근성은 어느 문명에서나 보이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문제는 동아시아의 경우 그 속물근성을 유교철학으로 아예 합리화, 도덕화를 시켜놨다는 거다. 이런 속물근성이 합리화, 도덕화되어 우리 마음에 정착된 이상 이런 합리적인 운영체제를 바꿀 필요를 느낄 일이 없다는 거다.
이를 입증하는 예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가령 언론에서 주입식 교육을 관두고 원리교육, 토론식교육 같은 걸 하라고 하는데, 그 이유를 보면 지식 그 자체의 깨달음과 이를 통한 즐거움 때문이 아니라, 노벨상 같은 걸 타서 국위선양해야 된다는 걸 들고 있다. 유교적합리주의내에서의 과학적 사고방식의 도입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전통적인 유교합리주의와 마찬가지로 학문과 지식을 수단화하고 있다는 얘기다. 다시 말해 유교합리주의내에서의 과학적 사고의 수용이다.
이러니 안 된다는 거다.
우리 동아시아인은 여전히 현실에서 돈 많이 벌고 출세하는 것에만 생각이 집중되어 있기에 서양인의 사고방식에 진정으로 매력을 느낄 일은 절대로 없을테니까 말이다.
서양인과 동양인의 사고방식의 수준은 이 둘의 외모만큼이나 한쪽은 입체적인데 비해 한쪽은 평면적이라는 것이 결론이다.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서세동점현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4. 수학
동아시아를 비롯한 비서양 국가들의 수학은 전부다 대수학 영역에 치우쳐져 있음.
이 대수학이라는 건 말 그대로를 풀이하면 수를 대신한다는 뜻임. 즉 다시 말해 방정식의 x y 같은 걸 생각하면 되겠음.
왜 대수학 영역이 발달했느냐? 이유는 간단.
장사를 하든 공사를 하든 대수학은 실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음. 그 때문에 대수학 영역은 문명이 있는 이상
발전할 수밖에 없는 영역임. 그리고 서양에도 당연히 대수학 영역이 있음.
그러나 문제는 동양에는 기하학이 없었음. 서양의 유클리드 기하학이 있는 것과는 반대로 기하학이 전무한 것.
이 기하학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우선 대수학 이야기부터 하겠음.
동아시아 수학이 서양에 뒤지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구장산술이니 주비산경이니 같은 이야기를 꺼내는 경우를
보았을 것임. 그리고는 동아시아에도 원주율을 구했다느니 방정식이 있었다느니 마방진이 있었다느니 등의 이야기를
하며 서양수학을 능가한 것처럼 과장하는 글을 많이 보았을 것임.
그런데 이 대수학 영역에서조차 동아시아는 서양를 따라가지 못하는 결정적인 한계가 있음.
바로 "증명"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임.
니들이 중고등학교 수학 시간에 배웠던 그 증명이라는 걸 생각조차 못한 것임.
이 증명이라는 게 왜 중요한가?
증명이라는 것은 수학 원리, 수학 이론의 논리성, 무결점성을 입증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통해 새로운 원리를 발견할 수 있고 기존 논리의 정확성과 무결점성을 높이게 된다.
이 증명이란 과정을 고대 그리스 수학부터해서 서양은 매우 중시 여겼다.
공리와 절대적 진리를 구별했다. 공리라는 것은 사람들이 옳게 여기지만 논리적 증명은 되지 않은 것을 말한다.
동양에서는 그냥 바로 진리로 취급할 그럴 성질의 것이지.
이런 것조차도 정확하게 구별해서 서술하고 증명했다는 얘기다.
동아시아 수학은 이런 증명의 과정이 없다. 그 때문에 대수학 영역에서도 수학이라는 말보다는 산술이라는 명칭이 더
어울리는 그런 수준인 것이다.
가령 원주율 3을 구하는데 있어서 복잡한 수학적 논리나 공식은 필요 없다. 그냥 동그란 원을 그려놓고 그 원의 지름과
둘레의 길이를 비교해보면 누구나 확금비대충 3.xx가 나온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런 경험적 습득 수준에 그쳤기에 산술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기하학의 경우 동아시아에서는 탄생조차 하지 못했다.
그래서 중국이 기하학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그 생으로부터 약 1500년이 지난 뒤인 명나라 시절이었다.
마테오리치가 기하학 원론을 들고 오자 그제서야 처음으로 접하게 된 것이다.
그전까지 기하학이라는게 없었던 중국인으로서는 이해에 매우 어려움을 겪었다.
그리고 그 기하학의 필요성조차 없다고 여겼다. 이걸 어디에 써먹냐고 거들떠도 안 봤단 거지.
그래서 실제로 기하학 원론이 중국에서 완역된 것은 300년이 지난 1800년대이다.
서세동점의 시대로 서양세력이 동양을 쳐바르기 시작한 그 때서야 부랴부랴 번역을 마친 것이다.
애초에 역법(1년을 몇일로 잡느냐)도 동아시아는 자체 역법으로 생활하다가 이슬람 역법을 받아들이고 나중엔
서양의 역법인 그레고리력 즉 오늘날의 양력으로 통일했다. 이유는 간단. 이게 더 정밀해서 농사든 뭐든 더 써먹기 좋거든.
이처럼 수학에서 동아시아는 서양의 상대가 안 된다.
요즘 미국에서 황인이 백인보다 수학 잘한다는 얘기 나오는데 그거 다 대수학 영역 이야기다.
기하학이나 기타 논리가 필요한 분야에선 전혀 그렇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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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경우에는 개인의 성향에 따른 취향 아니냐, 개개인마다 다 다른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면에서 수학적 법칙과 황금비율 같은 자연법칙에 근간을 둔 서양 음악이, 구조성이나 조화성 면에서 비서구 음악에 비해 한단계 더 낫다고 생각되어지는 부분이 많습니다. 장르를 불문하고, 당장 우리가 듣는 음악들의 기반은 대부분 다 서구 음악이지요.
심지어는 현대 동양음악조차 서구 음악의 면면을 수용한 부분이 많습니다.
다만 음악 부분은 위 글에서 핵심적인 내용은 아니구요.
위 글에서 유심히 봐야하는 부분 중 중요한 부분은 바로 수학과 철학에 관한 부분입니다.
수학, 철학의 경우 동서양이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데요.
서구 수학이 동양 수학 대비 '증명'이라는 부분에서 월등히 앞서 있었으며, 서구 철학에서 오래 전부터 자연(혹은 논리)세계의 절대 법칙과, 도덕률, 공리를 일찌기 구분해 내었다는 사실은, 사실 서구만이 자력으로 근대화를 이룰 수 있었던 중요한 원인 중 하나입니다.
서구의 수학과 철학에서 보여지는 면면을 보면, 서구 사회는 다른 문화권 대비 논리적 사고와 자연현상의 증명 분야에서 비서구 문화권 대비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서구 학문의 증명, 논리 분야에서의 특성은 후대로 이어지면서 과학적 방법론과 자연과학, 신학과 세속 학문의 분리를 이루어 냈고, 그 결과 근대 사회가 태동할 수 있었습니다.
고전 그리스 시대부터 내려오던 논리 중심 전통 덕에 서구 사회에서 각각의 지식은 논리적, 혹은 자연과학적 절차를 통해 검증된 지식들만이 남고, 그 지식 위에 발전을 덧붙이는 형태였는데요. 초기 서구문명의 수준은 동양 대비 그다지 높지 않았지만, 검증된 지식이 쌓이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동양 대비 안정적인 지식적 기반을 가지고 폭발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이러한 발전이 임계치를 넘은 뒤에는 산업혁명과 과학혁명으로 이어져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지요.
반면에 동양 사상의 경우에는 '증명,' 검증' 분야에서 극히 취약했으며, 서구 문명에서는 발전 과정에서 대부분 사라진 2가지 오류를 끝내 버리지 못했었는데요...
1. 도덕률과 자연법칙의 절대성을 혼동하는 것.
2. 권위에 의한 논증 - 흔한 예로는 조선 성리학을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이로 인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지식이 발전하기 어려웠고.
자연과학과 수학, 기술 분야에서는 기존의 지식 중 정교하게 검증이 안 된 부분이 많았기에... 기존의 지식과 검증 방법론으로부터 큰 도움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그 결과 전근대시대의 발전 방식인 경험과 우연에 의해서만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수학과 자연과학은 일정 수준 이상의 복잡성을 가질 수 없었고.
여기에 기존의 도덕률을 중시하여 새로운 것을 배격하는 사상 체계가 더해져 근대로 발전할 수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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