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듬 시인의 시'시골 창녀'의 내용과 수상에 관하여

김이듬 시인의 시집 '히스테리아'는 한국에서는 이른바 패륜적인 시, 음란한 시, 집안 혈통을 모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져 사회 규범을 저해하는 것이라고 비난받았는데요.

미국에서는 이에 대해 기존 한국문화의 틀을 깨고 과감하게 정서를 표현하였다는 이유를 들어 상을 주었다고 합니다. 대시집의 대표시인 '시골 창녀'의 내용을 한번 읽어보니 시의 내용이 솔직담백하고, 조상들의 혈통과 자신의 숨기고 싶은 내재적 기질에 대해 용기있게 매우 잘 표현한 것 같아 올려보네요.


수상 관련 링크 :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3&oid=025&aid=0003043872


 [시골 창녀]


  진주에 기생이 많았다고 해도

  우리 집안에는 그런 여자 없었다 한다

  지리산 자락 아래 진주 기생이 이 나라 가장 오랜 기생 역사를 갖고 있다지만

  우리 집안에 열녀는 있어도 기생은 없었단다

  백정이나 노비, 상인 출신도 없는 사대부 선비 집안이었다며 아버지는 족보를 외우신다

  낮에 우리는 촉석루 앞마당에서 진주교방굿거리춤을 보고 있었다

  색한삼 양손에 끼고 버선발로 검무를 추는 여자와 눈이 맞았다


  집안 조상 중에 기생 하나 없었다는 게 이상하다

  창가에 달 오르면 부푼 가슴으로 가야금을 뜯던 관비 고모도 없고

  술자리 시중이 싫어 자결한 할미도 없었다는 거

  인물 좋았던 계집종 어미도 없었고

  색색 비단을 팔러 강을 건너던 삼촌도 없었다는 거

  온갖 멸시와 천대에 칼을 뽑아 들었던 백정 할아비도 없었다는 말은

  너무나 서운하다

  국란 때마다 나라 구한 조상은 있어도 기생으로 팔려 간 딸 하나 없었다는 말은 진짜 쓸쓸하다


  내 마음의 기생은 어디서 왔는가

  오늘밤 강가에 머물며 영감(靈感)을 뫼실까 하는 이 심정은

  영혼이라도 팔아 시 한 줄 얻고 싶은 이 퇴폐를 어찌할까

  밤마다 칼춤을 추는 나의 유흥은 어느 별에 박힌 유전자인가

  나는 사채 이자에 묶인 육체파 창녀하고 다를 바 없다


  나는 기생이다 위독한 어머니를 위해 팔려 간 소녀가 아니다 자발적으로 음란하고 방탕한 감정 창녀다 자다 일어나 하는 기분으로 토하고 마시고 다시 하는 기분으로 헝클어진 머리칼을 흔들며 엉망진창 여럿이 분위기를 살리는 기분으로 뭔가를 쓴다


  다시 나는 진주 남강가를 걷는다 유등 축제가 열리는 밤이다 취객이 말을 거는 야시장 강변이다 다국적의 등불이 강물 위를 떠가고 떠내려가다 엉망진창 걸려 있고 쏟아져 나온 사람들의 더러운 입김으로 시골 장터는 불야성이다


  부스스 펜을 꺼낸다 졸린다 펜을 물고 입술을 넘쳐 잉크가 번지는 줄 모르고 코를 훌쩍이며 강가에 앉아 뭔가를 쓴다 나는 내가 쓴 시 몇 줄에 묶였다 드디어 시에 결박되었다고 믿는 미치광이가 되었다


  눈앞에서 마귀가 바지를 내리고

  빨면 시 한 줄 주지

  악마라도 빨고 또 빨고, 계속해서 빨 심정이 된다

  자다가 일어나 밖으로 나와 절박하지 않게 치욕적인 감정도 없이

  커다란 펜을 문 채 나는 빤다 시가 쏟아질 때까지

  나는 감정 갈보, 시인이라고 소개할 때면 창녀라고 자백하는 기분이다 조상 중에 자신을 파는 사람은 없었다 '너처럼 나쁜 피가 없었다'고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펜을 불끈 쥔 채 부르르 떨었다

  나는 지금 지방 축제가 한창인 달밤에 늙은 천기(賤技)가 되어 양손에 칼을 들고 춤춘다


-


  공감.

  그것이 없을 때

  시인은 "너무나 서운"하고 "진짜 쓸쓸"하였다.

  그리하여 나를 팔았다.

  나를 팔아 감정을 샀다.

  주변의 손가락질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 때가 되어서야 춤을 출 수 있었다.

  축제 안에서 흥청망청 할 수 있었다.

  넘쳐야 흐르는 것.

  시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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