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의 대의민주주의는 과연 '민주주의적'인가? 글을 보고 드는 생각을 적어보네요.
대한민국헌법 1조 2항을 보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구절이 있죠.
불행히도 국민주권주의론에 따르자면, 저 위의 국민의 의미는 국민 개개인 혹은 이의 총의가 아닌, 가설적 총집합체로서의 국민입니다. 즉 국민 개개인 혹은 이의 총합과 헌법에서의 '국민'이란 다른 분리된 주체이며, 국가의 주권은 추상체로서의 국민에게 부여되어 있을 뿐 개개의 국민이라는 실체 혹은 그 총의에 부여된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나무위키에서는 국민주권주의와 인민주권주의가 혼용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완전히 다른 개념인데요. 학문적으로 볼 때 아래와 같은 구분이 있습니다.
국민주권주의(국민(nation)주권이론)
- 주권의 주체는 다름 아닌 하나의 통일체로서의 전체국민이며, 여기서 국민이란 국민 개개인 혹은 그 총의와 분리된 추상적 개념이다. 이를 바탕으로 국민이 선출한 대표자에 의한 통치를 의미하는 대의제의 원리가 도출된다.
- 국민주권주의 하에서는 1인 1표제가 필수인 것은 아니며, 필요하면 제한선거제를 실시할 수 있다.
- 국민의 권리가 아니라 채무로서의 선거를 통해 당선된 대표자는 이제 단순히 선거구민의 대표가 아니라 전체국민을 대표하는 무기속위임의 법리에 따른다.
- 이러한 대의제하의 통치방식은 다극화된 권력분립의 원리에 입각할 수밖에 없다.
인민주권주의(인민(people)주권이론)
- 주권의 주체는 구체적인 개개인의 총합이다. 따라서 현실적, 구체적인 주권자인 인민 자신이 직접통치하는 직접민주제를 이상으로 한다.
- 주권자인 인민의 투표권행사는 어떠한 제한도 불가능한 보통선거를 의미한다.
- 직접민주제의 논 리적 결과로 비록 인민을 대신하여 대표가 선출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대표자는 항시 인민의 지시, 통제를 받는 기속위임의 법리를 채택한다.
- 국민의 직접적인 지시, 통제를 받는 체제 하에서 직접민주제의 실현은 권력분립원리의 논리를 필연적인 것으로 볼 필요가 없다.(인민이 직접 통치하므로 권력분립은 필수가 아니라고 보는 것, 단 인민주권주의에서 권력분립을 부정, 반대하는 것은 아님)
이런 양자간의 주권이론의 차이를 보면, 대한민국과 그 헌정체계는 명확하게 국민주권주의를 따른다고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선거권 및 피선거권의 세부사항은 제한가능사항으로 헌법의 위임사항으로서 법률로 규율되며(공직선거법 등)
선출된 대표자는 국민의 의사에 복종할 의무가 없으며(무기속위임), 위의 법률위임사항에 의한 폐혜와 합쳐지면 류호정 디시 n번방 글처럼 극단적인 특권 및 무기속의식이 나타나기도 하죠... 류호정 n번방 글
위의 글은 법률의 위임으로 정당에 투표 -> 정당은 투표율만큼 임의로 국회의원 선출(2중 간접투표로 국민의사 희석) -> 국민의사가 그다지 반영되지 않은 방식으로 선출된 국회의원이 무기속위임 원리에 따라 제멋대로 사고를 쳤다는, 국민주권주의 기반 대의제의 극단적 폐해사례 중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국민주권주의 이론 중 가장 큰 폐해에 속하는 무기속주의는 영국에서 유래했는데요. 구체적인 내용은 윗 글에서 따온 아래 부분에 있습니다.
군주와 민중을 혐오하고 귀족의 통치를 지향하다
당시 영국 대의제의 이념을 정립한 인물은 바로 버크(E. Burke)이다. 그리고 버크의 이 '대의이론'은 현대적 대의제도의 이념적 온상으로 되었다.
18세기 영국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던 휘그주의(Whiggism)는 귀족적 과두제를 옹호했는데, 명예혁명 후 의회가 강력한 힘을 가지면서 영국에서 지배적인 정치이념으로 자리 잡았다. 이 휘그주의를 철저하게 체화했던 버크에 의하면, 의회란 군주 주권에 반대하여 정부를 창출해낼 수 있는 다수를 만들어주는 것을 담보하는 존재로서 그 구성원인 의원은 정치적으로 유효한 방법을 찾아내 전체적인 공공복리를 실현시키는 사람이다. 따라서 의원은 공적인 업무의 수행을 위하여 어디까지나 독자성을 지닌 공인(公人)으로 행동해야 한다. 그는 특수이익을 추구하는 선거민의 대리인이어서는 안 되며 선거인에게 기속(羈束)되어서는 안 된다. 이렇게 하여 E. Burke는 이른바 '명령적 위임(imperatives Mandat)'을 사실상 포기하고 있다. (선거에서 선출된 자가 선거민들의 요구에 따라야 하며 그 행위는 선거인들에게 책임을 져야 한다는 원칙으로서 기속위임(羈束委任)이라고도 한다. 이 용어의 반대어는 바로 자유위임(freies Mandat), 혹은 무기속위임이다.)
그에 따르면, 의원은 전체적인 공공복리의 실현을 위하여 집단적인 선거민의 명령적 위임이나 개인적인 개별적 선거민의 명령적 위임에 기속되어서는 안 된다. 즉, 의원은 선거로 선출된 후 자신의 선거구 내지 선거구민의 대리인이 아니라 전체 국민의 대표자로서 선거구민으로부터 독립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통치란 이성에 맞게 통치권을 행사할 수 있는 미덕을 갖춘 자가 담당해야 하고, 국민은 이에 직접 개입하면 안 된다.
이러한 E. Burke의 주장은 결국 군주와 국민을 혐오하고 그로부터 거리를 둔 상태에서 귀족들에 의한 통치를 도모하고자 한 휘그주의의 기본 노선을 충실히 지키는 것이었다. 당시의 의회주권이라는 논리는 귀족들이 의회를 장악함으로써 군주를 견제하려는 의도와 함께 국민을 전혀 중요하지 않은 존재로 간주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던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영국 대의제도는 17∼18세기에 '군주주권'만이 아니라 국민이 주권을 갖는 '국민 주권론'에 대해서도 투쟁적 이데올로기로서의 성격을 지니면서 결국 '의회 주권론'으로 귀착되었다.
즉 무기속주의 대의제를 채택하는 한, 그 근간은 국민을 위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기간한정 귀족특권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과두귀족정에 가까운 형태로 운영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국민 개개인은 국가의 주인도 아니었고, 힘겹게 뽑은 대표자들조차 국민의 의사를 따를 필요 없이 기간한정 귀족으로서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습니다.
즉 그저 선거를 통해 정당성을 몰아줄 뿐인 피통치 계급으로서 납세의 의무나 선거의 의무 군역, 노역의 의무 등등이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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