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행정수도법 위헌 확정 결정(2004헌마554)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

민법 1조에서는 "법률에 규정이 없으면 관습법에 따르고, 관습법이 없으면 조리(條理)에 의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관습법의 존재를 인정하나 성문법보다 지위가 낮은 보충적 규범이라는 의미이며, 모든 사항을 성문법으로 다 규율하기 어렵기에 많은 사람들이 따르는 관습이 있다면 법률(성문법)에 저촉되지 않는 선에서 그 존재를 인정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원래 관습법의 지위는 이와 같이 성문법의 하위 법개념으로서 보충적 지위였지만, 헌법재판소가 '신행정수도의건설을위한특별조치법'의 위헌사항을 심리하며 성문 헌법에 규율되지 않는 사항에 대해 위헌판결 내림으로서 관습헌법이라는 개념이 논의의 주체로서 대두되게 되었다.


신행정수도법 위헌 확정 결정(2004헌마554)에 따르면, 국가의 수도 '서울'은 비록 성문헌법에 규율된 사항은 아니다. 

그러나 서울은 '경국대전'에도 기록되어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조선시대부터 국가기관이 중추적으로 모여 정치와 행정의 중추적인 기능을 수행한 곳으로, 국가 정체성의 핵심이 되는 곳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성문헌법전에 모든 헌법적인 사항을 기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 국가 정체성의 핵심을 형성한다고 볼 수 있는 수도'서울'의 지위는 헌법전에 규율되어 있지 않더라도 관습적으로 헌법에 준한 지위를 가지는 것(관습헌법)으로 볼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그 근거로서는 

1. 기본적 헌법사항에 관하여 어떠한 관행 내지 관례가 존재할 것.

2. 관행은 국민이 그 존재를 인식하고 사라지지 않을 관행이라고 인정할 만큼 충분한 기간 동안 반복 내지 계속될 것(반복·계속성).

3. 관행은 지속성을 가지고 그 중간에 반대되는 관행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항상성).

4. 관행은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할 정도로 모호한 것이 아닌 명확한 내용을 가지고 있을 것(명료성) (위키백과 내용 인용)


라고 보았으며, 서울의 국가 수도로서의 지위는 이를 모두 충족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를 관습헌법으로 무작정 인정하기에는, 서울의 국가 수도로서의 지위는 현대 민주국가의 헌법제정권력인 '국민'이 제정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 있다. 

서울은 그 지리적인 편의성으로 인해 전근대 비민주적인 통치주체였던 조선왕조가 '경국대전'등에서 국가 통치의 편의성을 위해 임의 지정한 법률사항에 불과하며, 민주주의 하에서 국민의 의사를 물어 정당한 헌법 제정 절차를 걸친 사항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비민주적인 통치 주체였던 일본제국 식민청(조선총독부), 미군정 등도 편의성을 이유로 이를 이어받아 서울을 지역의 수도로 단순 지정했을 뿐이며, 여기에는 국민의 그 어떠한 희망이나 의사가 들어갔던 것은 아니다.


따라서 서울의 수도로서의 지위는 비민주적인 권력주체가 편의성을 이유로 지정한 법률사항에 불과하며, 단순히 이들의 통치 집권 기간이 600여년에 달했던 것일 뿐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근대적인 입헌민주국가(대한민국)의 수립 이후 국민의 대표자가 제정한 제헌헌법이나 그 이후의 성문헌법에 서울을 국가의 수도로 명시한 사항이 없었다면, 이는 원칙적으로는 법률사항 혹은 그 이하의 단순 관습법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서울의 수도로서의 법적 지위의 근거에 대해 생각해보면, 단순히 수도로서의 역사가 길었을 뿐 본질적으로는 비민주적인 권력에 의한 임의 지정 사항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이를 국가의 본질 중 하나로서 헌법사항으로 인정하는 것은 어찌 보면 크나큰 문제이다.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국가의 주요 정체성 중 하나가 실제로는 민주주의 제헌헌법으로부터 내려오는 사항이 아닌, 전근대 조선왕조와 조선총독부라는 식민권력의 지정사항을 국가기틀로서 인정하는 크나큰 문제일 수도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당시 위헌 판결은 헌법재판소의 권한을 아득히 초과한 것으로서, 국가정체성의 본질보다 일부 국가통치에 관여하고 있는 이익집단의 편의성 혹은 이해관계에 의한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이러한 의미로서의 관습헌법이란 원칙적으로 있어서는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다고 생각된다.


다만 현실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당시에는 서울에 모든 주요 국가기관이 소재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헌법재판관을 포함한 국가 상류층의 대다수가 서울에 거주하고 있었어서 이를 모두 이전하려면 국가의 부담이 만만찮았다는 점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즉 법적 정당성보다는 지배계급 일당의 편의성을 도모한 판결로서, 남자만의 병역의무 부과 사건(헌재 2010. 11. 25. 2006헌마328)와 마찬가지로 법리적으로 상당한 무리를 해서라도 서울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관습헌법을 의제했다고 볼 수 있다. 

댓글 3개:

Red Peter :

안녕하세요. 우연히 멋진 궁전에 방문한 나그네입니다. 게시한 다수의 글을 읽어보았는데요, 궁전 주인께서 다양한 분야에 체계적 지식을 갖고 계신 것으로 보입니다. 학부전공 외엔 상식수준의 지식조차 버거워하는 제겐 정말 놀랍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관심을 갖는 다양한 분야에 있어 체계적 학습을 하여 스스로 논의하는 글을 쓰는 것이 제 목표인데요. 궁전 주인분께선 어떤 방법으로 이러한 지식을 학습하신 것인지 궁금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제 전공은 신소재공학이며 제가 관심있는 분야는 수학, 서양고전음악, 심리학, 컴퓨터 사이언스 등 인데요. 해당 학부 커리큘럼의 교재들을 처음부터 냅다 읽고 있는데 이렇게 하는 게 맞을지 확신이 없어서 헤매는 중입니다.
감사합니다.

Liatris :

안녕하세요.
저는 개인적으로는 그냥 일정 기간마다 취미가 바뀌기때문에 그 과정에서 다양한 분야의 잡탕 지식을 책이나 인터넷 등으로부터 얻은 것 뿐입니다. 특별한 비법 같은 건 없고, 개인적으로 생각이 조금 많다 보니 이렇게 된 게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

Liatris :

저도 손이 가는데로 아무거나 잡아 읽는 편이라 체계적이진 않구요. 학은제나 사이버대학과정 등을 통해 취미삼아 과목들을 이수해보는 것도 괜찮을지도 모르겠네요. 저는 전공이 여러 개인데 이런 식으로 취미삼아 이수한 것들도 있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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